월간 한국수필2

월간 한국수필 2월호 500만원 고료 월산수필문학상 공모

권남희 후정 2011. 2. 8. 16:30

 

     

                       500만원 고료 월산수필문학상 공모  (6월 시상 )

 

   발행인 에세이

               

                         세한도(歲寒圖)

                                                   鄭 木 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협 부이사장)  


 겨울 산속의 움막 한 채-. 산은 묵언정진(黙言精進) 속에 빠져 있다.

추사(秋史)의 세한도를 본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실학자로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금석학을 연구하였다. 그는 추사체를 만들었고 문인화의 대가였다. 

 눈보라와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최소한의 거주공간인 세한도의 움막-.  움막 한 채는 추사 자신일지 모른다. 산은 만년 명상을 가졌으면서도 겨울이면 어김없이 동안거(冬安居)에 들어 면벽수도(面壁修道)에 임한다. 초당 앞에  소나무는 어깨 죽지가 꺾어져 있다. 뒤편의 잣나무는 고개를 들고 청청하다.

 귀청을 울리는 바람 속에 어깨 무너져 내린 소나무는 구부정하지만 푸른 기세는 여전하다. 잣나무는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치솟아 있다. 꺾어진 소나무는 늙은 몸으로 귀양살이 하는 추사의 모습이고, 싱싱한 잣나무는 젊은 제자의 기상을 그린 것일까.

 세한도는 즉흥적인 그림이다. 일체의 수식과 과장을 떨쳐버렸다. 나무들은 가진 것을 다 내놓아야 혹독한 눈보라와 혹한을 견뎌낼 수 있나보다. 겨울이면 소나무, 잣나무 등 상록수들이 독야청청(獨也靑靑)을 뽐내는 게 아니라, 시련을 견뎌낼 인고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세한도는 간단명료하다. 더 이상 축약할 수 없는 세계이다. 초당과 앞뒤 편에 소나무 두 그루와 잣나무 두 그루로 삼각구도를 이룬다. 추사가 단숨에  그린 작품이다. 세 개의 공간 분할로 생겨난 여백은 침묵 속에 빠진 산의 모습이고, 자신의 사색 공간을 보여준다. 

 세한도는 고도의 압축과 감정의 억제를 보인 작품이다. 추사의 삶과 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자신의 유배생활의 삶과 풍경을 담아놓은 마음의 자화상(自畵像)이 아닐까.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도 청나라의 최 신간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다.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이 중국에서 구해와 보내준 것이었다. 그는 제자로부터 120권 79책에 달하는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을 받고는 크게 감격했다. 추사는 답례로 작은 집 옆에 벼락 맞아 허리 꺾인 낙락장송이 겨우 한 가지 비틀어 잔명을 보존한 형상을 그린 세한도를 이상적에게 주었다.

 세한도(歲寒圖)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와 함께 김정희 그림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갈필(渴筆)과 검묵(儉墨)의 묘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문인화로서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추사가 벼슬살이를 할 적에는 당대 최고의 명필이요, 금석학자로서 문화계의 중심인물이었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의 한 사람이기도 했다.

 제주도 유배생활은 지금까지 누려왔던 여유로운 삶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추사는 삶의 겨울을 맞아 고독과 절망의 어둠 속에서 뼈저린 소외를 맛보았다. 그는 유배지에서 자신의 삶과 서예에 대해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추사는 가슴이 꽁꽁 얼어붙는 듯 아픔을 느꼈다. 지금까지 중국 서체를 흉내 내는 데 급급했던 자신의 모습이 우습게만 여겨졌다. 중국문화권에 빠져서 남의 문화를 답습하고 흉내 내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추사는 한국의 서체를 얻어내고 싶었다. 한국의 산, 강, 들판, 한국인의 성격에 맞는 선과 형태와 느낌을 담아내고 싶었다. 우리나라 자연과 민족의 마음이 담긴 서체를 창안해 내고 싶었다.

 그의 가슴에선 번개가 치고 하늘을 뒤집고 천둥이 울렸다. 당대의 명필이란 허울과 명성을 벗어버리고, 우리나라 자연과 기후와 마음으로 빚어낸 글씨를 써보고 싶었다. 산 능선, 강물의 유선(流線), 기와집 초가집의 선들이 이루는 온화하고도 힘찬 맥박과 감정을 서체에 담아보고 싶었다. 민족의 기개와 흥과 멋과 마음을 꽃피워내고 싶었다. 추사 서체는 제주도 유배생활에서의 고독과 소외가 준 성찰과 자각의 소산이었다.

 대화자도 없는 유배지에서 절대 고독과 명상은 참다운 예술세계의 길을 얻게 한 계기가 되었을 터이다. 예술가의 양식(糧食)은 고독과 침묵이다.

 추사는 중국 명필과 서체를 익히느라고 임서(臨書)를 통한 절차탁마(切磋琢磨)로 세월을 보내온 사람이었다. 중국의 6체는 중국의 멋과 흥과 미와 중국의 자연경관과 문화전통이 어울리어 빚어낸 서체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거대한 중국문명 속에 편승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망년자실(茫然自失) 하였으리라.

 그의 제주도 유배생활은 곧 세한도의 세계임을 말해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침묵과 소외 속의 삶이다. 그는 고독과 소외 속에서 영화와 권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참 모습과 해야 할 일을 찾아내었다. 사대사상과 강대국 문화에 젖어있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깨달았다. 

 추사는 겨울 한파에 어깨 죽지가 꺾여 내려앉은 구부정한 몸으로 세한도의 초당에 들어 침묵의 한복판에 앉아 붓을 들었을 것이다. 막막한 바다를 바라보며 붓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세한도 초당과 소나무는 동안거에 들어 오랜 침묵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는 ‘유배생활’이란 설한풍(雪寒風)에 정신을 차려, ‘추사체’라는 독보적인  서체를 창안하여, 민족 서체를 내놓게 되었다.

 고산(孤山) 윤선도, 송강(松江) 정철. 다산(茶山) 정약용 등이 모두 유배지에서 문학과 학문을 이룬 것은, 유배지에서의 고독과 침묵을 맞아들여 혼신의 집중력으로 독자적인 꽃을 피워냈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집 같은 세한도의 초당 한 채를 스스로 지어내려면, 안락과 호사만으로 안 된다. 영혼을 단련시키는 시련과 고통을 겪어낼 세월이 있어야 한다. 겨울 산속에 어깨 죽지가 부러진 소나무가 돼보아야 한다. 모든 것을 버린 침묵과 고독 속에서 마음의 꽃이 피어난다.   

 겨울 산 속의 움막 한 채-. ‘세한도’란 깨달음의 마음 풍경이 다가온다. 추사가 손에 붓을 든 채로 문을 열고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