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월간 한국수필 8월호

권남희 후정 2011. 8. 9.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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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에세이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

鄭 木 日(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한국문협 부이사장)

 

내소사는 변산반도 능가산 중심에 핀 연꽃이다.

내소사 대웅전은 못을 쓰지 않고 지은 다포식 구조의 목조건물이다. 두 나무를 이을 때,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추었다. 경험 많은 목수는 못을 쓰지 않는 법이다.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꽃살문은 나무결 그대로 도톰하게 살이 오른 듯 양각하여 입체감이 드러난다. 꽃송이는 가로로 네 송이 씩 일곱 줄로 여덟 짝의 문살에 수놓아져 있다. 꽃송이 하나에 꽃 이파리 네 개씩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꽃과 꽃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다. 연꽃과 모란과 국화꽃이 사방연속무늬로 수놓인 문살-. 화사한 꽃밭. 꽃과 꽃이 손을 잡고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곳이 극락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샹향이 아니고 무엇이랴.

천년 세월에 단청의 색깔이 다 날아가고 말았다. 꽃의 빛깔과 향기도 세월에 빛이 바랬다. 모두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꽃살문은 이미 화려함과 어여쁨 같은 욕심을 비어버리고 맨살을 드러냈다. 천년 세월 동안 이별에 솟는 눈물에 화장이 다 지워졌다. 맨 얼굴이지만, 꾸밈없는 근본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

화려한 단청이 사라지자 나무가 속에 품은 목리문(木理紋)의 아름다움이 연륜의 경지를 더해준다. 굳이 색을 입혀야 돋보인다는 상식을 지워버린다. 무욕과 순수의 정갈한 아름다움이 침묵 속에 피어있다. 바깥의 색을 지워냄으로써 내면의 진실과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꽃은 절정, 꽃자리는 최상의 상태를 말한다. 대웅전 꽃살문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자연의 순리를 어길 순 없다. 화려한 단청은 서서히 보이지 않게 날아가 나무의 맨얼굴로 돌아왔다. 맨얼굴의 꽃송이들에게서 마음의 향기가 풍겨온다. 꽃살문이 꽃밭이라면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처가 있는 불당(佛堂), 그곳은 깨달음의 공간이다.

내소사에 처음 와서, 대웅전 꽃살문 앞에 우두커니 서있다.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꽃, 노을, 사랑, 무지개, 청춘은 빨리 사라진다. 바삐 사라지는 것은 감동과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색과 향기도 버리고 편안해진 대웅전 꽃살문은 세월 속에 변하지 않는 깨달음의 꽃을 피워냈다. 홀로 깨어있는 촛불처럼 맑고 고요로운 얼굴이다.

그 까닭은 물어서 무엇 할까. 빛깔도 없고 향기도 없는 천년 꽃들이 피어 있는 문을 본다. 궁극의 문일 듯싶은 그 방문 앞에 서서 깨달음의 꽃들을 눈부신 듯 바라본다. 빛깔이 없어서 더 선명하고 향기가 없어서 오래 남는 꽃들을 본다.

천년 비바람에 씻기고 씻겨 무욕의 마음이 된 꽃들-. 하얀 창호지를 배경으로 천년 꽃밭을 이룬 방문을 바라본다. 꽃살문에 붙어있는 둥근 무쇠 방문 고리를 살그머니 당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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