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11. 10월호 월간한국수필

권남희 후정 2011. 10. 11. 14:40

 

채석강에서

鄭 木 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협부이사장)

그리운 이여.

바다를 왜 강이라 했는지 궁금하다. 채석강에 와서 오랜 만남을 바위에 기록하여 책으로 쌓아올린 도서관이 있음을 보고 놀란다. 변산반도 맨 서쪽에 있는 채석강…….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 드러나 있는 곳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붙인 이름. 해안의 절경과 백사장의 풍치가 돋보인다. 물결도 잔잔하여 바다가 강물처럼 느껴진다.

채석강 바위 절벽 밑, 채곡채곡 쌓아놓은 바위 책들의 책갈피에서 수억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바다물결과 만난다. 바람을 만난다. 수만 권의 바위 책이 쌓여있는 절벽 위에는 잡초가 우거지고 풀꽃들이 피어나 있다. 비쭉비쭉 바깥에 드러난 바위로 된 책갈피는 파도와 세월에 침식되어 과연 누가 해독할 수 있을 것인가. 지질학자들이 연구를 통해서 오랜 세월에 풍화된 퇴적층에 적힌 신비 언어를 읽어낼 수 있을까.

그리운 이여.

채석강에 바위 책으로 쌓아올린 도서관이 있을 줄 몰랐다. 바위 책에는 백악기시대부터 지금까지 과연 무슨 말들을 기록해 놓았을까. 지구 환경과 기후를 그대로 새겨 놓았을까. 공룡이 하늘과 바다 위를 나르던 시절부터 생물들의 진화 전과정이 적혀 있는 것일까.

수만 권의 바위 책들에선 파도 소리만 꿈결인양 들려오고 있다. 산과 바다의 만남, 시간과 공간의 만남, 태고와 현재의 만남을 보여주는 바위 책 앞에서 파도소리를 듣는다. 얇은 바위 퇴적층마다 수만 년이 축약돼 있다. 수많은 지층들을 보니 이곳이 영원의 한 복판인 듯 느껴진다. 순간이 영원의 숨결이며 중심이 아닐까. 퇴적층마다 빛깔이 조금씩 다르다.

채석강에서 수만 권의 바위 책들을 보니,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시간에 침식되어 하나의 퇴적층으로 돌아가고 있다.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그리운 이여.

해변엔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바위를 밟고 해변을 산책한다. 파도가 밀려와 만든 구멍, 파도가 만든 문양, 갖가지 형상들이 아로새겨진 바위 위를 걷는다. 수억 년의 숨결을 듣는다. 백악기 시대의 공룡들도 이 해변을 거닐다가 사라져 갔을 것이다.

채석강에 와서 삶이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며, 자연회귀의 길임을 깨달게 한다. 자연으로 편안히 돌아갈 수 있으려면 자연에 거슬리지 않는 조화의 삶, 자연과 공감을 이루는 삶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운 이여.

돌아가는 자연스런 모습과 자연의 순리를 적어놓은 바위 책들을 마음으로 읽으며 사랑하던 순간의 행복을 느낀다. 서해의 저녁놀이 하늘과 바다를 아름다움으로 물들이겠지만, 짧은 순간이나 우리에게 사랑의 추억이 있어서 돌아가는 길이 허전하지 않을 듯하다. 심장이 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 영원의 중심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