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월간 한국수필 2011,11월호

권남희 후정 2011. 11. 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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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鄭 木 日(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협 부이사장)

2011년 시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오르세미술관 특별전을 관람했다. 파리에 가서 오르세미술관을 찾아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았지만, 천천히 생각하며 보기 위해 다시 찾아갔다. 고흐는 낮의 사내였다. 햇살 아래서 빛과 그림자를 관찰하면서 사물과 존재의 모습과 진실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 태양 아래 피부가 검게 타 들어가고, 움푹 들어간 푸른 눈망울은 점점 깊어졌다. 작품 ‘해바라기’ ‘자화상’ ‘밀밭’ 등 거의 모든 작품들은 낮의 작업이었고, 땀의 소산이었다. 타는 듯 눈부신 햇살의 노래이고 생명의 맥박이었다. 그의 세계는 햇살의 말, 작열하는 빛의 영감(靈感)이었다.

고흐의 그림을 볼 적마다 태양 광선에 꿈틀대며 반응하는 꽃이며 나무의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를 듣곤 했다. 생명의 열기가 펄펄 끓어올랐다.나는 달과 별들이 뜨는 밤을 기다리곤 했다. 밤이 깊을수록 나의 눈과 마음은 하늘과 우주에 머물었다. 달밤이면 들판으로 나갔다. 2년간 쯤 덕유산에서 온전히 달빛 고요 속에 빠져 있었다. 달밤이면 누가 대금 산조를 부는 것일까.달빛 고요는 만 년 명상의 노래였다. 덕유산의 그리움을 풀어서 부는 대금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달밤에 들판으로 나가면 밤의 정령들과 별들의 목소리가 가깝게 다가오고 이마를 맞대곤 했다.고요는 한 포기 난초 같았다. 고요의 한 가운데서 솟아오른 듯했다. 부드럽게 치솟았지만, 우주의 중심이고 흔들리지 않았다. 달빛 침묵에 취한 산과 들판과 마을을 바라보곤 했다. 소나무들의 묵상을 보고 있었다.

화가 고흐를 알아주는 사람은 생전에 아무도 없었다. 태양만이 붉은 물감과 노란 물감을 섞어 이글거리는, 생명의 원천을 만들어내는 화가를 기억하고 있었을 뿐이다.

산중에 있을 적에는 첩첩의 산으로 막혀있는 듯했다. 가까이 있는 대상은 오로지 내 눈 속까지 마음속까지 환히 들여다보며 말을 건네는 달 뿐이었다. 덕유산에서 지낸 2년간은 달이 무한의 상상이었고, 감성의 우주였다. 나는 달빛 황홀 속에 빠져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 앞에서 고흐의 별과의 영혼교감을 보았다. 고흐가 권총 자살로 인생을 마치기 1년 전쯤 정신병원 창 너머로 상레미 시의 큰 길거리와 별이 깔린 밤하늘이 보였다. 왼 쪽에 불꽃처럼 하늘로 치오른 나무 한 그루, 교회당의 첨탑이 보이는 마을의 밤하늘……. 황금빛 별들이 주술을 외는 듯한 몽상의 밤……. 주먹 만한 별들이 번쩍번쩍 천상의 언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덕유산의 달밤이 떠올랐다. 달은 밤의 고독한 지배자였다. 영혼을 사로잡는 독재자였지만 무한의 자유와 감성을 제공했다. 무수한 별들이 수만 광년(光年)을 걸쳐 보내온 반짝거림은 영원의 빛남이었고 말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밤의 세계, 한없는 침묵 속에 별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곤 했다.

현대엔 어디에도 영혼이 가 닿을 깊은 밤을 볼 수가 없다. 휘황한 불빛과 탐욕과 유혹의 밤이 있을 뿐이다. 영혼의 안식 시간이었던 밤은 사라지고 말았다. ‘별이 빛나는 밤’은 다시는 우리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어둡고 캄캄할수록 맑은 밤이 온다. 이제 어디서 황홀한 도취 속에 빠져버렸던 달빛 고요, 별이 빛나는 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