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12년 월간 한 국수필 1월호 허영자 시인 권두시'승천'과 함께

권남희 후정 2012. 1. 3. 15:56

 

                                 정기구독 02-532-87-2-3    발행인 정목일 수필가. 편집주간권남희 .사무국장 서원순  /선우미디어 충판  

하루 한 낱말을 새기게 하소서

-새해의 다짐

鄭 木 日(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협 부이사장)

 

 

새해 아침에는 일 년이란 긴 시간을 펼쳐놓게 하지 마십시오.

나는 하루씩을 살아가는 하루살이에 불과합니다. 하루를 어떻게 잘 보내야 할지, 의미 있고 행복한 순간을 가질지를 생각합니다.

흘러간 세월은 아득하고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저녁노을 무렵에 불빛을 찾아 모여들어 최후를 마치는 하루살이를 보면서, 삶의 목표와 지향점이 빛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새해에는 화려한 욕망이나 계획을 세우지 않게 해주십시오. 일 년의 계획을 성사시킨 해는 열 중 한 번도 되지 않았습니다.

부디 평상심을 주셔서 흔들리지 않는 자제심을 갖게 해주십시오. 남보다 더 뛰어나고 눈길을 사로잡으려는 현시욕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늘의 주제를 갖게 해주십시오. 하루를 보내면서 한 낱말을 소중히 안게 해주십시오. 하루 삶 속에서 발견한 말을 잠들 무렵에 수첩 속에 써놓게 하십시오. 하루가 그냥 흘러서 망각 속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 하루 하나씩의 주제어(主題語)를 찾으려고 합니다. 하루에 대한 발견과 의미부여 입니다.

일상은 변화무상한 듯싶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별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일상과 일과는 되풀이의 연속입니다. 무 변화에 지치고 싫증이 나기도 합니다. 무 변화와 무 재미와 무기력 속에 하루씩이 지나가고, 일 년이 지나간다면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렵습니다.

나는 하루의 의미를 한 낱말로 남기려고 합니다. 내 삶의 모습에 대해 진실하려 합니다. ‘게으름’ ‘무의미’ ‘무기력’ ‘허송’…이런 낱말들이 자주 기록되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의 행복에 대하여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삶의 절실성과 의미성에 대해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무에게 배우려 합니다. 새로운 나뭇가지 하나를 내기 위해, 전체와 주변에 어떻게 조화와 규형을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요. 나무들은 시간의 발견, 시간 속의 자각, 시간 속의 신비를 풀어냅니다. 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가 아무리 척박해도 우주의 중심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주어진 삶의 환경이 최선의 생존 조건임을 받아들입니다. 보드블럭 틈새에 난 풀이거나, 바위 위에 떨어진 솔 씨라도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시간은 아무에게도 기다려주는 법이 없습니다.

날마다 같은 하루가 아님을 압니다. 난생 처음으로 만나는 축복의 시간임을 알게 하십시오. 하루를 맞으며 경배하게 하소서. 나무들처럼 아침의 신선한 기운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저물녘을 맞으며 하루와의 송별을 나누게 하십시오.

하루 동안에 한 일들을 생각합니다. 하루 동안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더없이 귀 하고 소중한 하루하루가 의식 없이 지나갑니다. 인간은 나이를 세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아직 닥쳐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의 진실, 가치, 의미를 어떻게 깨달음의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요. 깨달음의 꽃을 피울 때란 바로 오늘, 이 순간입니다.

지금까지 나는 오늘에 대한 불만족과 불행에 빠져 있었습니다. 오늘에 버림받은 듯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누구에게나 신선한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루에 대한 자각, 하루를 맞는 교감과 자세, 하루가 지닌 가치성에 대한 발견으로 하루를 경건하게 맞게 하소서.

나는 하루의 삶에 욕심을 부리지 않겠습니다. 하루가 지날 무렵에 한 낱말을 수첩에 기록해 놓겠습니다. 하루의 가치나 흔적, 껍데기일지라도 하루 한 낱말로서 다시 만날 수 없는 하루를 송별하겠습니다.

 

승천

_ 임진년 새 해에 -

허 영 자 시인 (성신여대 명예교수)

깊고 검은

늪 속의 이무기가

용이 되었다

용이 되어 승천한다

천년의 어둠

천년의 기다림이

찬란한 비늘

불타는 눈동자의

용이 되어 승천한다

산악도 강물도

세사의 번뇌도

한 겹 허물로 벗어놓고

오직 높이 하늘로 하늘로

빛나는 여의주를

입에 문 채

오색구름 몸에 두르고

용이 되어 승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