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정신과 의사이며 수필가인 배대균 을 만나다

권남희 후정 2011. 8. 9. 09:25

월간 한국수필 6월호 커버스토리 

 

신경정신과 의사로, 사랑의 전화등 지역봉사자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고 살아가는

 배대균 수필가를 만나다.

 

대담: 정목일수필가( 본회 이사장)

일시: 2011.5. 18.수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 반갑습니다. 자주 만나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흐르고 있는 점이 안타까워 이렇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작가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인간심리유형’을 학업으로도, 임상으로도 늘 만나는 의사이지 않습니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함께 공감하며 치유해주는 의사로서 자기고백적인 수필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었는지 궁금합니다.

배대균: 1962년 부산일보 ‘노처녀의 마음’ 청탁을 시작으로, 1969년 지방 수필 동인지 창립회원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오직 글을 쓴다는 사실에 즐거움을 갖고 자유인으로 지내는데 수필가 서인숙 선생님의 추천으로 뜻하지 않게 1991년 한국수필로 등단하였습니다. 수필을 쓰면서 책임감과 행복을 함께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비로소 남이 아닌 ,나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정: 2009년 제 28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소감에 대해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멀리서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입장이었다가 중앙문단의 관심을 받는 입장은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배: 생전 처음 받아보는 문학상이었습니다. 수상소식을 듣는 순간 환희의 전율이 온 몸을 적셨습니다. 지방이라는 소외감은 없었지만 분투적인 글쓰기의 삶의 챔피언이 된 느낌이었죠. 새벽이면 새벽마다 새로운 도전으로 글쓰기에 임하면서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는데 감회가 남다르고 각오를 더 다지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잠든 시간 종이에 연필 미끄러져가는 소리는 작가에게 살아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소리임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듣기싫은 소음일수도 있겠지요. 그 소리가 거슬린다고 했던 마누라에게 상장을 내밀어보였습니다. 새벽마다 내 마음과 연필이 달려 나가며 소리를 냈던 시간의 결실이지요.

 

정: 신경정신과 전문의로서 수필쓰기와의 상관 관계가 궁금합니다. 특히 주제나 소재 등과 관련하여 에피소드가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이시형박사의 수필집이 많이 팔린 경우를 보면 심리관련 에세이는 분명 독자들을 흡수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 돈이 많은 것하고, 연인이 있는 것은 속이지를 못한다는 서양 속담이 생각납니다. 인간이 지닌 의식구조와 무의식의 세계는 글을 통해서 낱낱이 들통이 납니다. 글이 매끄럽지 못하다거나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닌, 글속에 내가 아닌 그림자가 드리웠는지는 남들이 더 잘 아는 법이지 않습니까? 글을 쓰는데 최소한 나에게만은 진실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50년 세월의 임상에서 숱한 소재들을 만났음에도 나의 고민들과 연관성이 없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나의 고민이 아닌 사례자의 이야기를 말해볼까요? ‘종이를 먹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 어느날 그녀에게 한 장의 러브 레터가 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그’로부터 온 편지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다시 소식이 끊어지고 맙니다. 기다리다 지친 그녀는 그만 그 연서를 먹어 삼켜 버렸습니다. 완전한 소유욕과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다른 한 편의 분노로 그때부터 그녀는 종이만 보이면 모조리 먹어 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남의 이야기를 꺼내 쓴다면 무한대로 펼칠 수가 있겠지요.

내 글을 쓰는데 숱한 그 소재들을 단순히 사례집으로서만 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나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해주는 감시자이며, 나의 삶의 안내자이기도 하지요. 언제, 어느 때고 내 영혼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소유욕과 해결은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사랑의 전화' 운영, '질서지키기 운동' '로터리운동' 등 지역 봉사활동에 많은 노력을 해오셨는데 이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주십시오.

배: 사랑의 전화’는 1985에 개설한 법인체입니다. 오직 한 통화의 전화로서 말 못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시원하게 털어주는 역할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회정화운동’으로는 회원 12백여 명과 10년간 질서 지키기에 캠페인 벌였지만 기초 인성 교육의 절실함을 깨달아가는 시간입니다. 마산시립교향약단, 시립합창단을 1984에 창단했는데, 시민 정서에 기여하고 시민의 자존심을 키우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대한 반공연맹 경남 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시군을 순방하면서 민주주의 기치 아래 함께 뭉쳤

 

정:최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쓴 탐험기를 번역하셨는데, 내용을 알고싶고 쓰게 된 동기가 따로 있는지요?

배: 몇 해 전 아마존으로 갔을 때 네그로강과 솔로몬강의 검고 흰 미스테리의 강물을 본 것이 전부였습니다. 굳이 경험한 것을 기악한다면 식인고기 피라냐에게 손가락을 크게 물린 일 뿐입니다. 여전사들의 오른쪽 유방을 제거한:아마존 부족(A-Mazos)마을을 가보지 못했기에, 자료를 찾던 중 루즈벨트의 ‘의문의 강’ 탐험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500쪽의 영문글에 7개월을 매달린 끝에, 지금은 저작권과 출판사와 접속 중인 상태입니다. 미국 제26대 대통령(1901-1909)이었던 루즈벨트는, 1913 브라질의 살아있는 신화 론돈 대령과 함께 227일간의 브라질의 미개척 지역지역인 ‘의문의 강’을 벌레, 급류와 폭포, 굶주림, 온갖 질병 그리고 인디언과 싸우면서 사경에 이른 몸으로 탐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귀환했는데 온갖 불신이 그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벌레에 물린 알 수 없는 병으로 루즈벨트는 4여년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동행했던 아들 커미트가 자살함으로써 탐험의 고통들을 청산하는 아픔이 담겨있습니다. 그 때 동행한 론돈 대령은 브라질의 영웅으로 역사 속에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정: 앞으로 인생에 대한 다른 계획이나 수필쓰기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만들고 계신지요.

배:죽음을 앞두거나 그러지 않는 이상 한 인간의 행로를 어느 시점에서 혁신적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껏 살아온 것처럼 끊임없이 진료와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 그것이 삶의 목표입니다. 글을 씀에 보다 더 진솔하고, 스스로를 깊게 통찰하며, 한 편 한 편의 글은 곧 나의 삶을 정리한 그 무엇들이기에 소중합니다. 또 쓰고 또 쓰면 그것은 곧 장수의 비결이겠고, 완벽한 죽음의 준비라고 믿습니다.

정: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수필을 사랑하시고 한국수필가협회에도 애정을 주시어 본회에 더욱 힘을 실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배대균약력

․ 1935년, 진해출생, ‘91 한국수필등단.

․ 마산, 경남, 한국문인협회, 국제 pen클럽

․ 경남수필, 한국 수필작가회, 한국수필가협회

․ 생각나는 사람들, 필름 '97, 배가 산으로 간다, 한국인의 문신,

5월에도 피지 않는 나무, Out of word

․ (현)배신경정신과의원장

․ 수상내역 - 마산 시민이 주는 상, 경상남도 문화상, 국무총리 표창

국민훈장 석류장, 국민훈장 목련장, 주한미군 ‘좋은 이웃상’

적십자 표상, ‘88 올림픽 휘장, 월남 종군공로 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