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관한 미학적 접근
-권남희 수필 <끈>을 읽고 = <육감 & 하이테크>수필집 수록 작품
이 명 재 문학평론가
인생은 만남이라고 한스 카로사도 설파했지만 필자와 권남희 수필가는 문학을 통한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어 만났다.
십여 년 전에 한 문학 모임에서 얼핏 스쳐본 그를 올바로 알기 시작한 것은 그의 수필 <아버지의 삽>을 읽고서였다. 어쩌면 농경시대의 유물 같은 삽 한 자루로서 끈끈하게 이어진 부녀의 연과 사랑을 리얼하게 토로해서 인상에 남는 가작이었다. 이글에는 그의 남다르게 가족사 짙은 고뇌와 따뜻한 정이 생생한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특히 그녀가 대학 때는 삽질을 멀리해서 갈등을 겪어오다 부친 장례 날 묘소에 흙을 얻으며 부녀가 화해하는 심경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 왔다.
더욱이 이런 권남희 작가를 괄목상대하기는 그의 <끈>을 읽고 난 감흥에서였다. 그의 다섯 번째 수필집으로서 최근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작인《육감 & 하이테크》를 통해서이다. 다소 낯선 제목과 튀는 색깔 표지 안에 담긴 글의 매력에 빠져든 정도랄까.
그의 <끈>은 결코 <아버지의 삽>에 못지않은 질량으로 다가든다. <끈>은 보다 다원적인 실체로서 연상적으로 엮어낸 수작이다. 농경사회의 생산도구인 삽에 비해서 끈은 모름지기 동서고금의 사물을 뛰어넘어 시공간까지 가로지르며 종횡으로 이어지는 관념대상이어서만이 아니다. 그의 <끈>은 실로 현상적인 구체성뿐만이 아니라 예술적인 상상력을 아우른 미학적 접근이 수긍되고 남는다.
“퇴근길 전철에서 산사나이 박정헌이 쓴 <끈>을 읽는다.”로 시작된 이 글은 “우직하게 목숨과도 바꿀만한, 끈을 갖는 일이 어려운 일일까.”로 마무리되기까지 시종 끈으로 이어지고 있다. 퇴근 중에 차안에서 끈에 관한 책을 읽는데 장님부부가 서로 무명천으로 묶어서 이끌며 전철 칸을 다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어서 그 끈은 인간의 삶에서 띠와 금줄, 명줄, 탯줄 등으로 민속적인 풍습과 생물학적인 데로 명상의 나래를 펴간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에서 어려울 때 허리띠를 졸라매며 출세의 연줄과 끈 떨어진 뒤웅박, 가방끈이 길다, 짧다 등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삶은 끈, 띠, 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목숨을 명줄이라 했으니 오래 전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탄생 사실을 알리는 금줄을 문밖에 걸었다. 새 생명은 어머니의 몸에서 줄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냉정하게도 그 줄은 끊기게 된다. 탯줄을 자를 때 비로소 진짜 생명을 부여받고 홀로서기의 아픔을 겪기 시작한다고 본다.
인간은 그때 벌써 줄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생명줄을 찾아 허둥거린다. 줄에 대한 애착은 원초적이기에 곳곳에서 살기 위해 줄을 잡고 줄을 바꾸고 줄을 대려 애쓰는 현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물에 빠졌을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살림형편이 어려워져 규모를 줄여야 할 때는 허리띠를 졸라맨다. 출세를 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하는 데 그 줄이 쓸모없는 존재가 되면 ‘끈 떨어진 두레박’이나 ‘끈 떨어진 박첨지’라 불렀다. 공부를 많이 했는지 아닌지는 ‘가방끈이 길다, 짧다.’로 돌려 말한다. 옛날 지게에 짐을 얹고 짐을 잡아매는 지게꼬리도 끈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죄인을 묶는 오랏줄뿐 아니라 살림도구를 묶는 끈 매듭도 빼놓지 않는다. 이밖에 어린이들의 줄넘기, 줄다리기, 그네타기, 고무줄놀이, 기차놀이를 거쳐서 동화 속의 밧줄에 닿는다. 그리고 그의 연상은 이중섭 그림에서 화가보다 먼저 일본에 건너간 처자들을 못 잊어 그린 ‘애들과 끈’에 미친다. 여기에서 더욱 주목되는 바는 이중섭과 같은 또래로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하여 북녘에 두고 온 처자를 못 잊는 아버지의 새끼 꼬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는 요즘의 세계화된 과학적 사이버 끈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세상은 변하였다. 눈에 보이는 끈이 없어도 소통하고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다. 혼자 있어도 인터넷 으로 지구를 여행하며 정보의 풍요함을 누리며 살아간다. 세계화된 사이버 끈은 미세한 신경세포처럼 예민하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동시다발성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이버 끈은 마음먹으면 잘라내고 일방적으로 잘라버리기도 한다. 아무리 벗겨내도 그 뿐인 양파의 속성일 수도 있다.
우직하게 목숨과도 바꿀만한, 끈을 갖는 일이 어려운 일일까.
여느 사람들은 끈을 단조롭게 여기고 내쳐버리게 마련인 끈을 그는 남다른 관찰과 명상으로서 심화된 사물로 형상화해 보여준다. 일찍이 황진이는 절편 시조에서 시간개념인 동짓달의 기나긴 밤을 ‘셔리셔리’ 감아놓은 물리적인 사물로 표출했지만 권남희는 그 현상적인 끈을 보다 다양한 대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의 수필 <끈>은 가시적인 끈 이야기를 동서고금의 시공간으로 넘나들면서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다채롭게 빚어낸 작품으로 빛나는 수필이다. 부친 중심의 삽은 일원적인 상관관계인데 비해서 객관적 상관물인 끈은 보다 다원적으로 풀어나가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이런 면은 그의 두드러진 감성이나 지성의 조화는 물론이요 남달리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통찰의 힘으로 빚어낸 값진 성과인 것이다.
《미시족》《어머니의 남자》《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처럼 제목부터 흥미로운 그의 이전 수필집들을 필자는 아직 통독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작들과 권남희의 남다른 프로필로써도 빼어난 문학세계의 진수는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은 곧 사람이라는 뷰퐁의 말마따나 작가와 작품은 긴밀한 상관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스스로 드러내듯 시골 농촌의 사남매 중 장녀로서 서울에 올라와 자취하며 대학생 때부터 화학도 답지 않게 소설문학상에 뽑기도 한 문학도였다. 더구나 일찍 자녀를 거느린 몸으로 힘겨운 시가 살이와 교편생활을 하는 중에도 스스로 노력하여 문단에 올랐다. 그리고는 오래도록 당찬 주부로서 여러 수필반을 지도하며 카메라를 메고 취재를 겸한 문예지 편집일을 맡고 있는 수필가이다.
가정환경이나 전공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난 정도로 대견한 일이다. 오직 농촌 태생다운 뚝심으로 도전하고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여 실력으로 이룬 보람인 셈이다.
이번에 펴낸 권남희의 다섯 번 째 수필집에는 창작수필에 세 편의 번역시를 포함하여 50편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들 수필들에 담겨있는 제재와 주제별 코드는 대체로 대여섯 가지로 나눠서 묶어볼 수 있겠다. 우선 <문턱><씨 뿌리는 사람>의 가족관계, <지혜가 고이는 시간><베르나를 베르베르><책을 정리하는 봄날>의 독서관계, <사랑에 안식처를 삼지 말라><소리> 등의 사랑관계이다. 그리고 <누가 그를 천하다할까><육감이 하이테크로 살아나는 세상>의 사회상, <너는 내 운명이랑게> <김밥과 햄버거><천자의 자식> 등의 음식, 그리고 <봄, 그리움을 그리다><노스탤지어의 커피 잔에>의 향수 등. 이들 작품은 흔히 서정과 자기과시에 치우친 여느 수필작가의 글쓰기 타성과는 달리 삶의 현장에서 느낀 고뇌와 사색 및 땀의 체취가 스미어 있어서 글의 향기를 더한다.
그 가운데서도 역시 위에서 살핀 여러 요소가 용해되어 있는 <아버지의 삽>과 <끈>이 대표작으로서 두드러져 보인다.
1987년에 <월간문학> 수필신인상에 당선된 이래 최근 한국문협 작가상을 수상한 권남희는 이미 작품 활동 사반세기를 맞은 중견문인이다. 남보다 앞선 체험들과 숱한 독서량을 반영한 그의 글을 읽는 독자는 으레 밑줄 치기로 책 한 권을 새까맣게 해 놓게 마련이다. 그만큼 소설문체 이상으로 다채롭고 진지하게 펼쳐가는 그의 산문을 대하는 독자들은 시원함과 아늑한 위안을 얻는다. 마치 무더위 철에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는 듯, 때로는 추위에 얼어붙은 심신의 한기를 씻어주는 온천수 같다고나 할까. 감성적이면서도 지적인 구도성을 지닌 그의 글은 신진의 그것처럼 싱그럽고 탄력 있어 단숨에 읽힌다.
독자들은 이렇게 발랄하며 진솔한 권남희 수필과의 만남을 통해 다정하고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문학평론가, 중앙대 인문대학장역임.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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