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에 공부를 시작하여 대학 강단에 서고 수필집을 내는 등 쉬지 않고 공부를 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육영수 여사와 함께 ‘5개 부문에서 빼어난 한국여성들’ 4위에 올랐던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선생님이 계시는 곳은 책읽고 글쓰기에 좋은 담백한 공간이다.
베란다 작은 테이블에 햇빛이 앉아있고 요즈음 읽고 있는 일본문고본으로 정리된 곳.
도심에서 소로우의 월든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대담: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1.8.
장소: 등촌동 SK타운 로비
정리: 권남희 편집주간
정목일 : 귀하신 시간을 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행사장에서 1970년대 등단한 수필작가들의 활발한 활동도 격려해주었지만 ‘70년대 등단 작가들이 수필 등단 1세대는 아니다’라고 조용히 꾸짖었습니다. 지면을 통해 정리를 부탁드립니다
정명숙 : 요즘 수필문학잡지마다 서로 자기네 글만이 우수하고 원조라며 자찬을 하는 모습과 마주칩니다. 장충동에 가면 족발집마다 원조집이라고 써붙이고 영업을 하는데 뭐 다를 게 있나 생각 했습니다. 그런 양심없는 내세움을 보고 무언가 정리를 해야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으로 던진 말이었습니다. 저는 1960년대 초 여성잡지와 신문 등에 글이 먼저 실리면서 등단하기 전 이름이 알려진 불리함도 있습니다. 주로 여성들의 억눌렸던 울분을 대리만족시켜주는 글이 많았는데 1971년에는 ‘비극은 없다’ 홍성유소설가와 콤비를 이루어 여성동아에 남성칼럼 여성칼럼을 2년간 연재하였지요. 그 때 우리나라에 칼럼이 등장했다는 후문도 들렸습니다. 어느 방송국 로비에서 조경희 선생을 만났는데 대뜸 야단치듯 ‘글을 그렇게 써도 돼?’ 하면서 글을 하나 쓰라고 권유하여 <다람쥐>를 드렸어요. 창간호 무렵 한국수필에 실리면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활동하고 있는 여성수필가가 적었는데 이명온(1911) 정충량(1916) 조경희(1918)전숙희(1919) 박현서( 1921) 등인데 전숙희씨만 빼고 모두 기자출신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천경자화가, 전혜린 번역가, 잡지는 정명숙. 라디오는 이경희 이렇게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정: ‘정명숙 수필가’하면 한동안은 소설 얄개전을 쓰고 방송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신 조흔파(본명:봉순-김억소설가와 정비석 선생이 흔파라 지어줌) 선생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5월 19일에는 <문학의집.서울>에서 작고문인 행사와 함께 흔파선생 유품전시를 한 달간 했지요.
정명 : 나의 마지막을 용서와 화해하면서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연민과 애석함 이런 감정들이 바탕에 남았지만 그는 연애할 때부터 속을 썩인 남자였으니까요. 길을 가다가 도박하는 곳이 있으면 저를 세워둔 채 몇 시간이고 몰두하고 나의 대학 등록금을 들고나가 도박을 하니 아무리『얄개전』이 인기가 있으면 뭐합니까. 인기가 좋으니 여자들만 수없이 따르고 그런 남자의 아내노릇은 정말 괴로움의 연속이었지요. 오죽하면 ‘그가 죽어도 눈물흘리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겠어요. 1980년 12월 남편이 가고 다시 공부하면서 대학 강단에서 서고 더 강하게 살았습니다.
정: 누구에게나 글을 쓰게된 강력한 동기는 있지만 선생님은 오래 전 김효자수필가(경기대교수)와 대담형식으로 진행하는 여성지 인터뷰에서 ‘글쓰는 동기가 불순했다’고 밝혔는데 의도적인 글쓰기를 경계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도 된다고 느껴집니다. 당시 조흔파 선생님의 반발도 거셌을텐데요.
정명: 제 문학의 뿌리는 ‘분노’입니다. 부잣집아들로 자란 오빠들이 6.25를 겪으면서 생활에는 너무 무능한 점을 보고 분노했고 , 피난 길 선창가 배 위에서 아이가 죽으니까 발목에 쇠를 달아서 수장시키는 장면에 충격을 받고 그 뒤부터 나도 죽겠다는 말을 수시로 했지요. 나중에 전봇대에 붙인 ‘희망사 기자구함’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뽑혔습니다. 죽고싶다는 생각을 잊고 숙명여전 선배가 알려준 대로 학교를 가기 위해 월급 30만환을 받으면 생활비를 내놓지 않고 오빠 몰래 등록금을 모았는데 들켜서 쫒겨난 채 길 곳이 없어져버리기도 했지요.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화가나 ‘내가 누구하고라도 결혼한다‘는 생각으로 조흔파 선생하고 결혼 하여 주변은 벌집쑤셔놓듯 시끄러웠지요. 결국 결혼이 나의 인생을 구제해주는 것도 아닌채 엄청난 스트레스만 받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나를 아이취급하면서 무시 하였지요. 내성적인 내성격도 한몫했는데 딸의 성장과 함께 불투명한 나의 미래를 생각하자 피해의식으로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불만이 쌓여 욕을 하기위해 남편의 약점을 잡아 쓴 게 수필이었습니다. 남편의 치부도 드러내고 신랄한 비판도 하니까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며 펄펄뛰었지요. 독자들은 제 글에 더 신바람을 내니까 계속 써달라고 요구를 했는데 남편은 저를 달래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면서 글을 쓰지못하도록 했지요. 그를 꼬집는 글, 그 큰 테두리에는 애정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현대사회는 볼거리,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분야별 케이블 채널도 수백개입니다. 입맛에 맞게 골라보는 시대지만 당시는 방송국과 일간지도 많지 않아 뉴스 매체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수필가로서 선생님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명: MBC라디오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성지 별책부록 800매 정도의 분량으로 글을 여러 번 썼고 여성동아 편집주간 최일남 소설가의 응원에 힘입어 여성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글을 많이 썼습니다. 신선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제 스스로도 가장 놀랐던 일은, 1969년도 한국여성방송인 클럽-일명 지식있고 민감한 여성의 모임- (라디오와 TV의 종사자)에서 ‘우리시대 빼어난 여성’ 타이틀로 5개 부문에서 여성 앙케이드를 하였지요.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 김지미배우. 가장 매력있는 주부는 육영수 여사(영부인). 베스트드레서는 패티 김 가수 .새로운 타잎의 여성에 정명숙을 꼽았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놀랐지요.
정: ‘정명숙 수필가’하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서점을 다니며 책읽기를 꾸준하게 하는 노력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비에 있는 책장에도 모두 선생님이 기증한 책으로 채워져 있는걸 보고 놀랐습니다. 인간은 꿈꾸는 존재라고 하는데 좀 더 완성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명: 지금도 매일 낙서같은 일기를 쓰면서 메모를 남기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4시간만 자고 글 쓰고 카메라 둘러맨 채 취재하면서 연애하고 다니던 흔파를 보내고 나니 더욱 문학에 심취하여 공부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러시아 문학의 위대성을 다시 확인하면서 읽고있습니다. 톨스토이가 말년에 반했던 사상이 공자와 맹자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려했는데 반대하는 아내와의 다툼으로 집을 나와서 추운 겨울날 앓다가 죽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정: 문학수필의 과제를 잡문성으로부터 문학수필의 독자적인 위상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어떤 작품을 꼽을 수 있고 어떤 일들이 있어야 하는지요.
정명: 이희승의 딸깍발이와 김소운수필가의 <건망허망-국외자로 고향에 대한 원망 >을 말하고 싶습니다. 딱깍발이는 교과서에도 올라 알고 있겠지만 한 때 친일이라는 오해를 받아 이승만 정부로부터 저지받다가 1965년 영구 귀국한 김소운은 <조선 민요선><언문조선 구전민요집>등을 일어로 번역하여 알리는 일도 했습니다. 1980년에는 일본에 가서 고바마의 비교문학문화연구회 교수들을 불러서‘조선 동요서 자적권을 동경대학교 비교문학에 기증한다는 유언기탁을 하였습니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한사람씩 뽑아서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볼 일이지요.
정: 서정성이나 이상을 추구하는 산문에서 사실에 근거한 다큐멘터리형식의 수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정명: 리얼리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어떤 옷을 입고 태어나는 가에 따라 문학 장르적 특성을 드러내지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문학작품에서 간혹 말놀이에 불과한 글을 읽고 허탈에 빠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환타지가 오히려 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옷을 입고 접근하는 것을 볼 때 수필문학의 핵심도 리얼리티에서 정서수용이 더 강하지 않을까요. 요즈음은 지방자치마다 거액의 상금을 걸고 스토리공모를 하고 있는데 수필도 그런 쪽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정: 늘 건강하시어 이루고자 하는 문학에의 꿈, 그리고 독서에서 얻는 문학적 힌트들을 후배들에게도 전해주시기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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