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시민혁명은 올것인가
권남희 수필가(월간 한국수필 편집장)
4월 시민 혁명은 올 것인가.
인터넷, SNS, 카카오톡 등의 즉각성과 파급력을 갖춘 청년층 선거참여 결과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감지 불가한 변화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는 보수 기득권층은 ‘기득권을 버리고 거듭나야한다’는 개혁의지를 보이면서도 진실을 덮어버린 그들만의 돈 잔치는 여전한 듯하다. 시장경제 원리를 배경으로 태어난 대형 할인점과 프랜차이즈 확장으로 150만 영세 상인의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일자리만 늘어난 경제구조는 양극화 현상의 골을 깊게 만든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자유경쟁이 근본이라지만 좀 따뜻한 자본주의 안에서 서민들 삶의 터전을 보장받는 게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한 꿈인 것일까.
소시민들의 바람은 지극히 소박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할 수 있는 사회, 맞벌이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 스트레스가 없는 곳, 떡볶이나 라면가게, 개인 사업체를 운영해도 대기업에 잠식당할 염려가 없는 사회에서 결혼 하고 두 세 명의 아이를 낳아 교육을 마치면 노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신뢰감을 주는 정치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행복도 지킬 수 없는 불안한 사회에서의 분노와 좌절감은 우울증을 앓게 만들어 믿었던 정부에 배신감을 느끼고 만다. 대가족도 아닌 4-5명의 핵가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 직업. 아이들 학비 걱정없고 수명 100세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수입이 고정되었으면 하는 그 작은 바람이 터무니없는 것인가.
선거철에 느닷없이, 반값 등록금에, 보육비지원, 무상급식, 이미 영세 상인들이 사라진 골목상권을 보장하고 재래시장을 부활시킨다며 정책을 급조하는 게 정치인만이 가진 괴력인지 궁금하다.
4월 대선은 경쟁으로 치달아 각 후보들이 약속하는 공약을 지켜야하는 액수가 5년으로 추산할 때 34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 돈을 따져본다면 결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하거나 빚을 내야하는 무책임한 약속이다. 그렇게 당선한 정치인이 약속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매스컴을 활용하여 단발성 사업이나 내놓고 힘없는 결손가정, 다문화 가정, 나이든 독거세대 우롱하는 장면을 만나면 그 실망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각 후보들이 내놓는 선거공약은 듣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시점에서 일회성이든 선심성이든 그들을 믿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실업자와 젊은 층의 잠재 실업자. 은퇴자, 가정 주부 등 모두가 미래에 대한 불안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 80%가 넘는 한국에서 졸업 후 노는 청년이 24%가 넘는 우리의 현실, 취업이 되지 않아 다시 대학원 가고 어학연수 다녀오는 동안 30대가 되어버린 젊은층, 현실적으로 각자가 원하는 회사에서 안정된 직업을 갖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결혼은 늦어지고 아기도 갖지 못하는 노령사회를 불러오는 것이다.
서울시 S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어느 역에선가 다단계 활동하는 젊은이들이 잔뜩 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대부분 서울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올라온 그들은 합숙하면서 훈련 받고 심리적 압박을 받아 가족이나 친지 친구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폐단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은 대부분 성공하지 못한 채 상처만 안고 물러선다. 기성세대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은 왜일까.
4월의 유권자는 무엇보다 직업창출을 골고루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정부를 원한다. 기껏 한시적이고 거래도 살아나지 않는 건설사업만 벌려 분양되지 않는 아파트와 상가를 적체시키고 지방자치는 내수용 관광상품이나 개발한다면 한계가 있다.
관념적이고 보수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멀리 시야를 열어야 한다. 아날로그 세계의 노동집약적인 직종과 단순관리 직업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겪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1980년대 미국은 150만개 이상 중간 관리층 일자리가 사라지고 1990년대는 고위층까지 확대되어 부의 쏠림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가 설마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탁상행정에 다음정권으로 문제를 떠넘기는 뻔뻔스러움을 되풀이한다면 무능하고 세금만 삼키는 정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4월 유권자의 꿈은 단순하다. 시민생활의 회복이다. 유권자들은, 선거철이 돌아오면, 정당의 이익을 위해 다른 정당 정치인의 돈봉투 꼼수나 비리를 폭로하는 공방전을 되풀이하는 행태에 지쳐있다. 졸렬한 다툼을 벌이기보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인재를 고용하여 국민들이 시민 생활을 회복할 있을까 고민해야 하고 대안을 만들고 새로운 직업군도 만들어내도록 연구하는 정치인을 바란다.
1996년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책을 출간하면서 21세기에 다가올 직업혁명을 예고했다. 자동화 시스템은 모든 직업군에서 노동자를 퇴출시켜 중산층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고용기회가 줄어드는 사회, 인건비 절약을 위한 파트타임만 늘어나는 사회, 인공지능이 인간 직업군을 삼켜버리는 시대, 농부직업도 사라지고 컴퓨터가 농사를 짓는 시대를 예고했다.
실제로 캐나다 토론토에는 농경용 고층건물 58층 짜리 ‘스카이팜’을 구상하여 1년 내내 농사를 짓는 농법을 10년 내에 실현시킨다고 발표했다.
청군 백군 정치인들이 FTA협상에 목숨 건 채로 지리멸렬하게 소모적으로 싸우는 동안 벌써 사라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직업군 농부의 삶을 대처할 대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저출산 문제는 유엔에서도 보고될 만큼 위협적으로 보고 있다. 저출산율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한국은 300년 뒤에 인구 5만명으로 줄어든다는 미래보고서이다.
<결혼의 종말>을 발표한 리프킨의 책은 읽지 않더라도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 층의 상처는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결혼까지 끼리끼리 그들만의 리그로 선을 긋는 풍습에, 한우 소고기 등급처럼 소득으로 등급을 매기는 결혼시장, 하우스 푸어. 고학력자 푸어 등 결혼 적령기 젊은이들의 날개를 꺾는 저급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각종 빈곤자들만 양산하는 게 이런 저런 세금내고 살아가는 시민사회인가.
왜 아이를 낳아도 당당하게 혼자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지 묻고 싶다.
프랑스에서는 10대 미혼모들에게 아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월급여형태의 생활비를 지급하며 공동으로 여러 분야의 교육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다시 사회 저층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이다.
21세기 형 정권 창출은 정당간의 이권 싸움 그 결과물이 아니다. 봉사단체나 자선사업, 환경단체 등 제 3부문을 다양하게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끌어내는데서 싹튼다.
4월은 소시민들이 상처받지 않고 평범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계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회월간지 헌정 2012년 3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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