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진실한 마음으로 찍어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

권남희 후정 2012. 4. 23. 16:03

KCC월간 사보 4월호  수록원고

 

■ 테마에세이201204

 

사진은 실물보다 더 진실하다

 

셔터를 누르면 사진은 찍힌다. 디지털 카메라라면, 찍은 사진을 지워 버리기도 쉽다. 이렇듯 오늘날의 사진은 참으로 찍기도, 지워 버리기도 쉽다. 너무 간단하기에 사진 찍기는 이제 특별한 무언가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남겨진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살아남은 사진들이 말을 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기도 한다. “당신은, 왜, 무엇을 찍으려 했습니까?”

 

권남희( 수필가)

 

 

찍는다는 것, 본다는 것

사진은 사랑의 눈으로 찍어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에도 찍히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 찍는 사람의 마음도 들어가 있다. 아무리 같은 장소, 같은 대상을 찍어도 사진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 준다. 시간이 없거나 피곤하여 대충 찍으면 좋은 카메라라 해도 영락없이 무신경했던 마음이 그 사진에는 나타난다.

사진은 진실의 얼굴이고 깨달음의 시선이다. 가끔 내 얼굴 사진을 보고 흠칫 놀랄 때가 있다. 그 속에 낯선 내가, 아니 전혀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얼굴이라 믿었던 젊은 날의 표정, 상큼함, 탄력은 간 곳이 없다. 고집불통에 딱딱하고 쳐진 얼굴의 한 중년이 있을 뿐이다. 두려움에 놀라 ‘잘못 찍힌 것이다.’라며 포토샵에 올려 이른바 ‘뽀샵’을 해 대고 진짜 얼굴을 외면하지만, 냉정하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 거기에 있다.

어느 사진작가는 ‘사진은 실물보다 더 진실하다.’라고 말했다. 상당히 세련되고 우아한 실물인데도 사진만 찍으면 당황스러울 만큼 반대 인상으로 찍히는 사람이 있고, 별로 시선을 끌지 못하는 인물인데 사진을 찍으면 참 근사한 이미지가 형성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나와야 사진 잘 찍었다는 말을 한다. 언젠가 존경하는 선배의 전신사진을 프로필용으로 찍어드렸는데 마음에 들지 않은데다가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지?’라는 생각에 찢어버렸다고 하였다. 얼마나 자기애적이고 솔직한 표현인가! 단체로 찍은 사진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장 먼저 찾아내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로라며 거부 반응을 보인다.

 

지나간 시간과 무한한 빛의 선물

아이들 사진은 언제나 마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 일에 지치고 피곤할 때 아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그 순간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이들 사진을 보다가 문득 사진은 시간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은 물론, 뱃속에서부터 움직임을 촬영하여 기록으로 남기면서, 자라는 시간들을 사진으로 정리할 때의 행복감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사진은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사연을 담으며, 기적을 이루게 하는 사랑의 이름이다. 희망도, 사랑도, 아픔을 치유하는 일조차도 사진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석유 등 다른 에너지 자원은 고갈된다지만, 써도 써도 사라지지 않는 빛의 기적이 사진에서 이어지리라.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 김영갑이 남긴 제주 풍경 사진을 보다가 가슴이 울컥한 적이 있다. 그를 사로잡았던 곳, 그의 모든 것을 바쳐 정착하게 했던 제주 풍경이 시간과 함께 갖가지 형태와 색깔로 남아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의 사진 속에는 작가 자신의 사랑과 정열, 투병의 고통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23년간 사진을 찍고 제주도의 ‘두모악갤러리’에 7만 점을 남긴 김영갑. 그가 제주도 풍경만 전문으로 찍으면서 남긴 말이 있다.

“손바닥만한 창으로 내다본 세상은 기적처럼 신비롭고 경이로웠다.”

이제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 카메라가 흔하기에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는 평등 세상이 되었다. 전철이나 거리에서 학교에서 식당에서 셀카놀이를 하는 스마트폰 세대들을 수시로 만난다. 사진만 주고받으며 결혼을 했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빛의 세상에서 자기를 확인하고 자기를 점검하고 무한한 소통과 즉각적인 반응으로 자신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를 두고,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사회라고 비판도 하지만 이리저리 돌려보고 눌러보는 실험 활동으로 다른 예술적 이미지를 재생산시킨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팝 아티스트 앤디워홀이 예언했듯 대량 복제 시대가 온 것이다.

 

삶의 흔적을 남겨 주는 매개체

사진은 또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만날 수 없는 사람과 대상을 만날 수 있게 하는 훌륭한 매개체이다. 옛날 사람들 모습이나 살았던 흔적을 사진으로 보면 보물 지도를 받아든 것처럼 발견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림으로만, 글로만 만났던 고인들의 사진과 그들이 살았던 집, 작업실을 사진으로 볼 때면, 더욱, 내가 품었던 상상과 그 따뜻한 공기의 흐름을 눈치채며 충전을 받는다.

사진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살아 있기에 사람들을 수시로 시간 여행자로 만들기도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선물이기에 나는 신혼기부터 아이를 낳았을 때, 가족 여행을 갔던 일 등을 추억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 사진이 별로 없어 가슴이 찡하기도 하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가진 것도 어머니의 얼굴이 지워진 접시 사진을 보고서였다. 오래 전, 63빌딩에 구경을 가서 사진을 찍고 접시에 인쇄를 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니 바래고 바래다가 아예 형태만 남고 이목구비가 지워졌다. 말기 암으로 몇 개월의 판정을 받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사진을 같이 찍고 싶었지만 ‘마지막’을 눈치 챌까 봐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조금 나아지면 찍어드려야지 미루며 망설이는 틈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영정 사진을 찾다가 그조차도 어머니가 40대에 미리 찍어둔 사진이라는 사실에 죄스럽기만 했다.

 

진실, 어떻게 담을 것인가?

어느 하루,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방치해 둔 사진을 꺼내놓고 느낀 점이 있다. 왜 이런 저런 모습이지 않고 단 한 가지일까. 거의 모든 사진이 자연스럽기보다 정면을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사진 찍기에 대한 고정관념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행복해 보여야 하고, 잘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한 가지 방식으로 언제나 밝게 웃고 있었다. 미소 지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람은 분위기가 밝지 않으면 책임감을 갖고 ‘김치’, ‘멸치’, ‘어제 부부 싸움했어요?’라고 하면서 셔터를 누른다.

버릴 사진을 고르다가 문득 나의 뒷모습을 찍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서나 전철에서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건 남의 뒷모습만 실컷 구경하지만 나의 뒷모습도 때로 궁금하다.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무방비 상태의 뒷모습을 이모저모로 찍어 보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진실한 말이 거기 있지 않을까?

 

 

□ 필자 약력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부문으로 등단한 필자는 왕성하게 글을 쓰며 여러 권의 수필집을 발표했으며, 동시에 사진작가로서도 활동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진과 수필이 어우러진 ‘육감 & 하이테크’라는 수필집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월간 ‘한국수필’ 편집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 ‘시간의 방 혼자 남다’ 등 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