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문학은 보물섬같아야 한다

권남희 후정 2012. 5. 2. 15:35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놀다  2012년 5월호 한국산문 수록 원고

권남희 수필가

설렜다.

안성 난실리 조병화문학관은 처음 가지만 그에게서 시를 배우며 문학바람에 흔들렸던 나의 30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때도 시인은 고독하다 노래했으니 집필실 어느 구석에 시인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비밀보따리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마침 바티칸 교황청은 400년 역사상 처음 비밀문서와 희귀고문서 100점을 일반에 공개하는 전시를 로마 카피톨리노 박물관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영국 헨리왕의 결혼무효화 요청편지부터 종교재판을 받았던 갈릴레이의 서명, 프랑스 혁명으로 처형된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의 비탄에 잠긴 편지 등 온통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들이었다. 작가라면 한번쯤 그 비밀스러움에 다가가 발굴해보는 꿈을 갖지 않을까.

작가가 태어나 살았던 곳은 문학의 발화점이다. 그의 체취나 흔적이 남은 곳, 귀거래사를 담은 곳은 무언가 인간적이고 특별해야 한다는 기대를 가진다. 문학관, 미술관. 박물관이 우리에게도 생겨나고 풍성해진 문화로 사랑받는 일은 기업을 세우는 일만큼이나 가치있는 일이다. 가끔 지나치게 애국적인 면만 내세우거나 교조주의로 흐르는 이상기류를 만나면 마치 가시울타리 넘어 눈치껏 살펴보아야하는 만큼 당혹스럽다.

작가의 집은 멋진 곳이지 않은가! 탱자울타리 가시에 찔리는듯, 벌에 한 방 쏘이는 듯한 감수성을 맛보고싶어 들른 관람자들에게 권위적으로 나오면 곤란하다. 뻔한 설명으로 시간을 뺏는 문화 지킴이들을 기피하게 만들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낭만적 도덕가, 예술가들이 그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문자들 모두 그곳에 무릎꿇은 소가 되어 되새김질만 한다면 무슨 제국주의 학교도 아닌 이상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낭만주의자의 상징인 베레모와 조병화 시인의 파이프는 브랜드가 되어 이후 모자를 쓴 작가들이 주변에 꽃처럼 피어났다. 시를 사랑하는 만큼 시인을 사랑하게 만든 힘은 그런 것들이다.

조병화문학관을 마주한 마당에서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양지바른 무덤이었다. 시인의 무덤이 ‘편운재’ 집필실 옆이라니! 어머니 묘 옆에 서실을 짓고 주말마다 찾아와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던 시인의 시간이 바람과 놀고 있다. 좀 매운 봄 바람을 피해 남향으로 앉은 시인, 그의 어머님과 아내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햇볕을 한껏 품고 있는, 풍수가들이 꼽는 배산임수 터가 이런 형태일까, 그보다는 일찍부터 이곳에서 별을 품고 해와 달을 노래했을 시인, 그리움에 목마른 그가 다시 돌아와 스스로 칠성판을 지고 이곳에 묻힌 결말이 더 신비스럽다.

나는 잠시 봄볕을 쬐고 있는 무덤가에 주저앉아 내가 밟았던 봄의 촉수들을 보았다. 이 난실리에 얼마나 많은 봄 이야기들을 묻고 또 묻었을까. 꽃들은 알 것이다. 그의 한숨소리와 산책했던 시간들이 뿌리가 되어 해마다 이야기꽃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 사랑인가, 그리움인가, 미련인가, 봄이 열리며 내 마음 내가 모르누나” 봄이 열린다고 했던 그의 시가 생각났다. 봄이 열릴 때마다 부질없는 마음에 흔들리니 어지럽다 했다. 그가 사랑했던 이들의 이름만큼이나 각각인 봄의 얼굴들을 살펴본다.

매발톱, 할미꽃, 섬초롱 ,패랭이 솜나물 냉이 쑥 .... 시인의 비밀을 먹고 자랐을 봄들의 혼령도 이제 비밀스럽게 묻혔다.

그곳에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무덤가의 어린 나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양지바른 무덤가에는 늘 아이들이 몰려서 놀지 않았던가. 초등학교 때까지 방학이면 으레 외가에 들러 한달씩 머물다 왔었는데 대부분 집들은 남향에 흙마당이었다. 놀 곳이 마땅치 않고 별다른 놀이가 없던 겨울의 아이들은 남의 집 처마밑에 서서 해바라기를 하며 떠들거나 자치기를 하였는데 종일토록 놀기 좋은 곳은 해가 잘 드는 무덤가였다. 하루 해가 모자랄 정도로 실컷 놀아도 괜찮은 곳이었다. 어느 집안인가. 떼가 골고루 입혀져 황토흙도 붙지 않는 무덤주변은 밟아줄수록 떼가 뿌리를 잘 내려서일까. 동네어른들도 그리 말리지 않았다. 무덤은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무덤가에 앉아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는 어른들에게나 괜찮은 마당이었다.

이미 20년 전 문화마을로 지정된 난실리 조병화문학관에서 육필원고, 시화작품, 의자 ,모자, 파이프 등을 보며 흔적을 찾아보면 한 꼭지 정도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했던 예상은 빗나갔다. 그저 문학의 형태 속에서 지극히 추상화로 압축된 것들을 감상하며 숨은 그림 찾기에 만족해야 하는 하루였다. 후배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 생전에 남긴 시인의 시비 ‘꿈’처럼 그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을 뿐이다.

상상력의 마당이 되어주고 있는 박물관 문학관들을 보며 천년의 꿈을 꾼다. 1300년 닫혀있던 측천무후의 릉이 발굴을 기다리며 세계인들에게 설렘을 주듯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쌓인 집들이 풍성할수록 좋지 않은가. 그곳에 시간이 내려앉아 아우라를 형성하는 일은 우리들에게 행복한 일이다.

어린 날 무덤가에서 놀던 내가 이제 문학작품을 뒤적여 잘 묻어둔 생각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문득 100년 후 개봉할 수 있는 비밀캡슐을 남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권남희 약력

 (1987년 <월간문학>수필당선. 현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

수필집 《미시족》 《그대 삶의 붉은 포도밭》《육감&하이테크》등 5권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

E-mail: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