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몇개 되지않는 일상의 움직임들

권남희 후정 2012. 5. 13. 11:36

2012년 현대수필 여름호 퓨전수필코너 수록

터치 터치 움직임 없는 움직씨들

-그날도 權씨의 움직씨들 움직이지 않았다-

권남희 수필가

 

박차고 일어나다

아침 해가 나를 찾기 전, 알람소리 끝나기 전 발끝으로 이불을 걷어낸다.

하루살이 움직씨들에 불을 켜고 꾸물거림의 조짐은 기지개로 쫓는다. 북창을 열어 수탉벼슬의 붉은 도도함같은 바람을 들이킨다. 샤워를 하는 동안 커피물은 99도로 올라 출발선의 긴장감으로 가랑거린다. 내 하루를 그리는 머릿속지도는 헤어드라이기 소리에 맞장구를 친다. 아주 오랫동안 몇 가지 움직씨들은 반복 훈련되어 이식된 장기처럼 내 것이 되었다. 가끔 면역결핍증세로 거부반응이 일어 움직씨들이 ‘금일휴업’을 내거는 날은 종일 대 여섯 잔의 커피를 마시며 어슬렁거려야 한다.

乘, 타다

세상은 넓고 탈 것은 많다.

삼촌이 태워주던 목마로 외가를 가던 길, 말이 끌던 마차를 타고 다니던 나의 길은 온갖 탈 것들로 뒤덮였다.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아파트 어디쯤 구불거리고 있을 버스를 좇아 시선의 화살을 쏜다. 뭇시선에 끌려 사거리 신호를 무시한 채 선을 넘어오느라 광역버스 반도 안 되는 몸뚱이의 마을 버스는 당나귀처럼 뒤뚱거리고 덜컹거린다. 나의 뜀박질도 당나귀처럼 깡총대다 버스에 오르면 고래 뱃속이 이럴까. 자리는 이미 동이 났다. 베낭을 짊어진 학생들과 산에 오르려는 은퇴자들로 제대로 서 있기도 벅차다. 승차했다고 떠나는 것은 아니다. 백년 만에 폭설이 내렸던 날 기지도 못하는 당나귀버스는 여기저기 버려진 승용차들과 피난민들처럼 들어찬 사람들의 한숨에 허억 !허연 숨을 토하다 멈추고 말았다. 전철역 에스컬레이터는 각 마을의 당나귀버스와 승용차, 택시에서 내린 사람들로 북적이고 노약자 엘리베이터는 언제 보아도 만원이다.

환승하다

세상은 갈아타기를 권한다.

부부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는 일은 이제 식은 죽 먹기지만 사람들은 식은 죽, 삭은 죽의 멀건 지리함에 환승을 꿈꾼다. 사회학자는 보통사람도 두 세 번 결혼하는 사회를 예언했다. 은행은 예금 갈아타기를 권장하고 보험사나 전화국은 다른 회사로 바꾸기를 유혹한다.

한가지색의 순환선이 지루할 환승놀이를 한다. 오렌지. 블루, 그린, 핑크라인의 스무 개쯤 되는 개찰구에서는 ‘환승입니다.!!!!!’로 종일 난타전을 벌인다. 하룻밤 사이 돋는 사춘기아이 여드름처럼, 타다닥 터지는 팝콘처럼 환승 소리 뒤덮인 역사에서 이곳이 우주정거장인가 착각하기도 한다.

하루 열 두 번의 환승을 거치면 귓속에서 환승후유증을 앓는다. ‘환승입니다..... 환승. 환승 .... 너도 바꿔 !.....’

터치 터치

기저귀도 떼지 않은 유아들이 터치에 능숙하다. 컴퓨터를 건드리고 스마트폰을 건드리고 게임을 한다. 순간 터치가 정보를 쌓고 삭제키를 스치다 십년 저장한 정보를 하루살이처럼 죽이는 오류를 일으킨다. 보이스 피싱에 낚인 계좌이체 터치는 생각해 볼 일이다.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아이패드, 컴퓨터자판 치는 일상이 또 진화한다면 문자나 사진을 남의 집 가게 유리문이나 공중에 펼쳐놓고 헛손질을 할 때가 올 것이다. 불어오는 한류 바람을 향해 터치 터치 인생의 품질을 바꿔야겠다.

뜯다

어머니는 수시로 나에게 “고것을 콱 쥐어뜯어버려야 너를 무시하지 않지. 어서 달려들어 뜯어내 ” 강요를 했다. 어디를 쥐어뜯어야 할 지 몰라 나는 쭈뼛대며 “내 남편을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 말로 하다 담배 꼬나 문 그녀의 시니컬한 웃음에 완패당하기도 했다.

소도 풀을 뜯지 않는 세상, 고지서 봉투 뜯고 일회용 커피봉지 뜯고 택배상자 뜯어 내용물의 포장을 뜯는다. 사무실로 온 우편물을 뜯고 현관에 붙은 광고전단을 뜯는다. 짬뽕이라도 배달 온 날은 칭칭 감은 랩포장을 뜯느라 가위를 들고 허동댄다. 경비들은 건물 게시판 불법광고를 뜯고 불법 주정차 노란 딱지를 차 이마에 붙인 날은 뜯다 못해 할퀴고 긁고 밀고 분탕질 한판이다.

마트에서 담배를 산 남자는 담배갑에 밀착된 셀룰로이드 투명포장을 뜯다 화를 내고 팩 우유를 산 나는 ‘여는 곳’ 반대쪽을 붙들고 실랑이하다 성질을 부린다. 마트 한 귀퉁이에는 뜯겨져 나간 비닐과 봉지들이 몰려있고 밤사이 멋대로 뜯겨진 포장재들은 술 덜 깬 사람 머리칼처럼 산산하게 흐트러져 있다. 오직 뜯겨지기 위해 태어나는 소모성 그 위대함을 본다.

돌아오다

돌아올 곳을 둔다는 것은 불행을 막는 안전장치일까.

바람난 것들은 바람기가 빠지면 간 고등어 쩐 눈물로 돌아온다. 헤어짐을 당한 연인은 ‘돌아오는 순간 차 버릴 것이다’며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돌아가는 버스는 느긋하다. 매일 그 시간 귀가하는 사람들은 바람 빠진 풍선으로 푸르륵 흔들린다. 아파트 단지 가로등 불빛을 어깨에 얹고 걷는 사람들은 뒷모습으로 서 있는 나무들이다.

돌아온 일에 마침표를 찍듯 씻기 굿을 한다. 더러워진 손을 씻고 분장한 얼굴을 벗기고 발 냄새를 쫒는다. ‘왜 씻는 일까지 내가 해야 하지?’ 아침에 쌓았던 커피 잔, 접시들을 씻으며 덜덜대는 혼잣말 굿이 TV소리에 묻힌다. 아침에 뜯어 발겼던 빵 봉지와 씻지 않고 먹는 사과를 뜯었던 비닐은 조리대 위에서 숨 죽어 있다.

움직씨들 눕다

박범신의 풀잎만 눕는 것이 아니다. 열정이 다한 것은 포개어 눕다 마주눕고 돌아눕다 외로 눕고 끝내 반듯이 눕는다.

온 종일 움직였던 내 움직씨들이 기억을 따라 제자리를 찾아든다. 번지를 잘못 찾아 눕지 않는 움직씨들도 있다. ‘잠들다’가 자리를 찾지 못할 때 TV를 틀고 움직씨를 달랜다. 이탈된 움직씨는 나를 공격하여 코피를 쏟게 하기 때문이다. 내일 또 반복할 내 인생의 움직씨들은 늙지도 않아 앞날은 창창하다. 호적에 오른 내 이름처럼, 공원에 세워둔 기념조각품처럼 그렇게.

반전을 꿈꾸다

태생적으로 인간은 갖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살아간다. 꼼수, 노림수, 별수 ,무리수, 버팀수, 36계수, 고단수 .......

인생 최고의 수를 보여준 스티브잡스의 반전은 별 수가 아니었다. 태어나 버림받고 입양되고 IT업계 수장이 되고 자신의 회사에서 쫒겨나고 귀환하여 57살로 죽으면서 반전의 수를 챙겼다. 그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어떤 수가 있을까 뒤지게 만든 것이다.

반복은 반전을 불러온다는데 누가 알까. 미동 없는 나의 움직씨들이 잠들 때 나는 여간 배짱으로 쓰지 못하는 움직씨들을 반복 반복 입력한다.

날다. 떠나다. 버리다. 대이동. 떠돌다. 연애 스캔들, 두 세 번의 결혼 등

무리수라 불리는 움직씨들을 부추겨 움직씨 업계에서 대반전을 일으키는 일이다.

권남희 약력

1987년 <월간문학> 수필등단.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작품집《육감&하이테크》등 5권 .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 외 . 덕성여대 강의.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