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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성찰의 달
정 목 일수필가( 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11월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달이다.
가쁜 숨을 고르며 성찰과 명상에 잠기고 싶은 달이다. 삶의 발자취를 뒤돌아보고, 남은 일 년을 마무리할 지혜를 얻는 달이다.
명상의 한 복판에 촛불을 켜들고, 일 년이란 촛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사라진 촛불로서 무엇을 밝혔는가를 살피는 달이다. 지금 이 순간,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삶의 좌표를 점검해보고 싶은 때다. 세월은 흘러가 일 년 중 마지막 달을 두고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듯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달이 11월이다.
꿈, 치열, 약동, 과시, 성숙, 찬란함을 내려놓고, 고요의 심연으로 잠기고 싶은 달이다. 겸허히 자신을 숙이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반성하며, 남아있는 길을 향해 힘을 기우릴 것을 다짐해야 할 때다.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한 톨의 씨앗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품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치는 달이어야 한다. 11월은 번잡과 놀이와 흥분을 떠나, 지나 간 삶의 발자취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 달이다. 집착과 욕망에 눈이 어두워 인생사와 세상사를 바로 보지 못하고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요동쳤다. 일 년 중 10달을 보내고서야 부질없는 행보와 욕심으로 인한 과실(過失)이 보인다. 지나온 길을 최선인 줄 알고 달려 왔지만 허방, 거짓, 탐욕의 길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음을 비워야만 가야할 길, 해야 할 일이 보인다.
식물들에서 삶을 배워야 한다. 식물은 과식이 없고 집착이 없다. 지금 이 순간, 놓치지 않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며 순명(順命)에 따르는 식물의 삶을 보아야 한다.
동물들은 항상 과욕에 사로잡혀 화를 부르고 실패를 거듭한다. 식물들은 정해진 생명률에 따라 모든 열정을 쏟고 소흘함이 없는 완성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11월은 결실의 가을을 마무리하고 겨울 언덕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화려한 낙엽을 떨꿔내고 가지가 눈보라에 꺾이지 않게 추위에 얼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조이며, 고독을 맞아들여야 한다. 1월부터 10월까지 지나간 세월의 비망록을 점검하고, 남은 달을 마무리해야 한다. 마음속에 자각의 촛불을 켜고 어떻게 일 년을 마무리 할 것인지, 일 년의 최선, 일 년의 의미를 모아 집중력을 쏟아야 한다.
11월이면 들판에 나가 보아야 한다. 들판은 비워져 있다. 비어있는 들판 길을 혼자 걸어보는 것도 좋다. 들판 속으로 걸어가면, 오곡을 키워내던 흙들이 편안히 누워있다. 땅이 얼고 눈이 덮힐 것이다. 땅은 새봄에 씨앗들을 발아시키고 키워낼 지력(地力)을 보강하기 위해 겨울잠을 잘 것이다. 땅이 얼어붙고 갈라지는 아픔을 견디며, 겨울의 고난을 참아낼 것이다. 들판이 허전하게 비워진 것은 봄이 환희를 맞고, 여름의 성장, 가을의 결실을 거두기 위한 힘을 비축하기 위한 것이다.
11월은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싶은 달이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의 때와 먼지를 씻어내고 맑음과 청결함을 찾고 싶은 달이다. 살을 파고드는 찬바람, 비어있는 들판에 황량하게 흙먼지가 날리는 계절을 맞아 비움의 지혜, 비움의 미학을 터득하고 싶은 때이다.
11월은 문득 생각나는 사람에게 육필 편지 한 통을 써 보내고 싶은 달이다. 우리는 그 동안 날마다 휴대폰, 인터넷 등 전자매체로 용건이나 일상의 잡담을 나누는 데 그치고, 진실로 사랑의 숨결, 진실의 토로, 마음의 치유, 정다운 소통, 그리운 대화를 나눌 육필편지를 쓴 적이 언제이든가. 육필로 쓴 종이편지는 정의 체취와 그리움이 묻어나며 불현듯 먼 곳을 방문해서라도 만나고 싶어진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육필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지 않으랴.
11월은 일 년의 종착기에 속하지만, 마지막 달은 아니다. 일 년의 결실을 점검하고 일 년의 마무리를 생각해보는 귀중한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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