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작가의 얼굴 >마르셀 라이히라니 츠키

권남희 후정 2014. 1. 17. 11:59

 

권남희 수필교실 추천 도서 2014년 1월 셋째주 수업

작가의 얼굴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 츠키

독일에서 ‘문학의 교황’이라 불리는 폴란드계 유대인 비평가. 1920년 6월 폴란드 브위츠와베크에서 출생. 1929년 가족과 벨를린으로 이주. 베를린 피히테 김나지움 시절 독일의 문학. 음악, 연극 등에 심취하여 대학 진학을 희망. 아비투어를 치뤘지만 1938년 10월 제 3국의 유대인 탄압에 의해 1만 2천명이 넘는 폴란드계 유대인들과 함께 강제 추방당했고 바르샤바 게토에 수용되었다.

1943년 트레블랑카 강제 수용소로 이소오디기 직전 1942년 결혼한 아내 테오 필라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 한 올가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지켜준 부부에게 세계문학작품을 이야기로 풀어 들려주며 열달넘게 숨어 지냈디. 제 2차 세계 대전 종전뒤 폴란드군에 입대하여 정보부와 외무부에서 근무. 폴란드 공산당에 가입. 런던 주재 폴란드 총영사관영사로 일하기도 했다. 런던 주재 시절 ‘제국’이라는 뜻의 라이히Reich라는 성의 뉘앙스 때문에 ‘라니츠키’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49년 폴란드 정보부와 외무부, 공산당에서 축출된 뒤 1958년까지 독일문학 편집자, 비평가,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폴란드에서의 부자유를 견디지 못한 그는 1958년 가족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한스 베르너 리이터가 창설한 독일 현대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학단체로 일컬어지는 ‘47그룹’에 참여하여 현대 독일 작가들과 교분을 맺었고 1960년부터 1973년까지 <차이트>의 상임문학학 평론가 1973년부터 1988년까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문예부장으로 일하며 현대 독일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독일 공영방송 ZDF의 <문학 4중주> 라는 서평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 전 독일에 이름을 알렸고 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권위를 타파하는 거침없고 명쾌한 평론으로 독일 문학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공격적이며 친대중적인 평론으로 귄터 그라스, 마르틴 발저, 페터 한트게 등 여러 유명작가들이 그에게 등을 볼리기도 했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웁살라 대학, 등의 객원 교수를 지냈고 1974년부터 튀빙겐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다. 뮌헨대학, 위트레흐트대학, 웁살라대학 등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리카르다 후흐 문학상 , 괴테 문학상 , 토마스만 문학상, 루투비히 베르네 문학상 등을 받았다. 서문

윌리엄 세익스피어/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모제스 멘델스죤/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리드리히 폰 실러/ 프리드리히 휠덜린/ 프리드리히 슐레겔/ E.T.A 호프만 / 하인리히 폰 글라이스트/ 루트비히 베르네/ 하인리히 하이네/ 리하르트 바그너/ 테오도어 폰타네/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 안톤 체호프/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어 슈니츨러/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 리카르다 후흐/알프레트 케어/하인리히만/ 하인리히만과 토마스만 형제/ 알프레드 폴가/ 토마스만/ 알프레트 되블린 / 프란츠 카프카/ 리온 포이 히트 방거/ 아르놀트 츠바이크/ 프란츠 베르펠/ 클라분트/ 오제프 로트/ 베르톨르 브레히트/ 볼프강 쾨펜/ 막스 프리슈/ 솔 벨로/ 페테르 바이스/ 하인리히 뵐 / 에리히 프리트/ 지그프리트 렌츠/ 귄터그라스/ 토마스 베른 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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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페이지부터 옮긴이의 말

우리는 모두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학과 예술, 정치나 사회, 그 무엇에 대해 만하건 실은 자신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들, 소망하고 지향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모든 이야기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 지에 대한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들은 누군가에게 가 닿아, 하나의 거울이 되고 그림자가 된다.-이하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