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창조문예 2015년 2월호

권남희 후정 2015. 2. 8. 19:26

 

 

 

2015년 2월호 제 217호 창조문예 수록원고 

 

서있는 여자

권남희 수필가

명동 골목에는 늘 그 여자가 아침 일찍부터 서 있곤 했다. 나무 한그루 볼 수 없는 대형상가 외벽을 지주삼아 꼿꼿한 자태다. 어디서 어떻게 잠들었다 나오는지 알 수 없지만 상가가 문을 열기 전 이른 아침이면 장승처럼 그 자리에 서있다. 여름에도 그 차림으로 서있고 추운 겨울날도 여전한 차림으로 그렇게 서있다. 옷은 겹겹이 껴입어 엠보싱비닐 몇겹을 말아서 세워둔 둥치처럼 둔하고 아슬아슬해 보였다. 누군가 실수로 밀면 넘어져 혼자 힘으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고 표정은 굳어있어 단호하기까지하다. 돈이라도 줄까. 먹을 것을 사다줘야하나, 말을 붙여볼 것인지........ 화장실은 다니는지. 밥은 먹는 것인지.

나 혼자 ‘둥치’라 별명붙인 그녀를 흘낏거리다가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치기를 몇 년 동안이나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둥치 그녀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추운 날 거리에서 동사한 것은 아닌지 시설에 입원했는지 걱정을 하는데 며칠 후면 둥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있다. 나는 안심을 하며 다시 둥치를 흘낏거리고 둥치가 소중하게 세워둔 제법 큰 짐 뭉치를 훔쳐보곤 했다.

어느 날부터 둥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하다가 차라리 요양원에 들어갔기를 바라며 잊어갈 쯤 다른 노숙여성이 나타났다. 둥치 그녀가 서있던 맞은 편 전화부스 옆에 둥치보다 젊어보이는 여자가 서있기 시작한 것이다. 공중전화박스 옆에 폐지와 물건을 담았던 종이상자, 주변에서 모은 병과 플라스틱과 일회용 종이컵 등을 모아 쌓아두고 있다. 젊었을 적 몇 살에 상처를 받았는지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 긴 생머리에 수도사같이 긴 검은 옷차림이지만 앞부분치아는 노숙생활로 이미 대여섯개나 빠져 있다. 지나치면서 들으면 혼잣말을 하고 있다. 문을 열지않은 가게 앞에서 일회용 가스불에 찌개를 끓이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흘낏거릴 뿐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여자 노숙인들은 도심 어디든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 없다고 느껴서인지 퍼질러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서성거리거나 서 있다. 언제든 스스로 방어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리라. 남자 노숙인들과 어울려있을 때도 서있다.

하지만 노숙하는 남자들은 지하철 계단이나 화장실 입구에 박스를 깔고 앉아있거나 구걸도 당당하게 하고 있다. 돈 받을 수 있는 작은 통을 옆에 두고 아예 누워서 잠을 자는 남자노숙인들, 술 마시고 근처 마트에서 행패부리는 알콜중독자에 신문이나 책 읽는 노숙인 등 다양하다.

영하 10도로 내려간 어느 아침 나는 수사같은 검은 옷차림의 그녀를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두툼한 옷 좀 가져다드릴까요. 그녀는 웃으며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 한마디에 나는 더 이상 대꾸도 못하고 뒤돌아서 걸으며 후회하고 만다. 차라리 돈을 건네는 게 돕는 일인 것을.

‘서있다’는 일은 긴장했다는 의미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 시간이 없을 때, 망을 볼 때. 불안할 때 서있어야 안전을 느끼는 것이다.

서있는 노숙여성에게서 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현대여성들은 이제 가정 일에서 해방된 듯 보이지만 어떤 행태로든 죽을 때까지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돌봐야할 상황에 부딪혔다. 살림할 규모도 줄어들고 로봇이나 컴퓨터가 내장된 가전제품이 발달하여 가사노동에서 풀려나버렸는데 시간과 자유를 얻은 대신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 늘어나고 봉사활동을 하고 바깥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지식인이고 세련되었고 자의식은 강한 현대 여성들은 서 있는 여성이다.

나의 삶도 이대로 100살 되도록 늦줄놓지 못한 채 서 있는 여자로 살아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권남희

1987년 <월간 문학> 수필 등단 현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작품집 《육감하이테크》 《그대삶의붉은 포도밭 》등 5권 수필선집《내 마음의 나무》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