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공항책자수록원고
일곱빛깔 사랑 공항
권남희 수필가
어느 벽돌공의 꿈이었던가. 비바람과 추위를 피하는 일이 흙과 물과 지푸라기가 전부였던 우리들 살림살이가 공항에 다다라 불멸의 업을 이룬 듯하다. 이곳이 우주정거장인가 착각할만큼 기하하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이 햇빛 속에서 빛나고 있다. 주차장을 바라보면 은빛바다가 출렁이고 건축규모의 거대함으로 현기증같은 가벼운 흔들림이 인다.
‘나는 정말 살아있는 있는 것일까, 영화속 한 장면을 보는 것일까’ 잠깐의 몽롱함속에 행복한 상상을 한다.
공항은 빛의 바다라는 생각을 한다. 공항에 도착하면 먼저 바다나 다를 것없는 하늘을 보게 된다. 활주로에 쏟아지는 햇빛으로 바다를 이루고 상상을 초월하는 힘으로 나는 곧 저 푸른빛 속으로 빨려올라가겠거니 생각하면 가슴벅찬 감동으로 심호흡부터 한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펼쳐져있는 푸름에 안도 하며 내가 탈 비행기를 색깔로 찾아내기도 한다. 빨간 기호부터 하늘색, 보라색 ,날개에 국기를 그린 비행기 등 나라마다 다른 정서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공항을 들어설 때마다 느끼는 기분은, 바퀴달린 가방을 끌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대감으로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공항에서 출발하는 승객의 70퍼센트가 여행자라고 하는데 그 속에서 나도 함께 살아 움직이고 그것도 멋지게 살고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서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공항에서 만나는 여행자들 얼굴은 일단 흥분한 몸짓에 화색이 돈다. 꿈꾸었던 일탈이 시작되는 순간은 짜릿하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이다.
그들이 꾸려온 가방은 떠나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일주일인가 ,보름인가, 장기체류 오지탐험인지 , 산티아고 순례길인지는 카트에 실린 가방이 말하고 있다.
공부를 떠나는 학생은 두려움이 설렘을 억눌러서인지 침착하게 앉아있고, 딸의 출산뒷바라지를 위해 떠나는 어머니는 배웅나온 남편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듣고 있다,
어린 자녀들과 가족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는 그들이 더 들뜬 모습이고 친구들의 우정을 다지느라 같은 색깔 셔츠를 나누어입은 팀에, 자녀가 보내주는 효도관광 떠나는 커플도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쪽은 연인들이다. 헤어지는 연인들은 손을 잡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느라 말수가 줄었고 여행을 떠나는 연인은 더욱 큰 설렘과 기대로 식당이나 살 곳에 대한 수다가 이어지고 있다.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 우울감이 사라져 힘을 얻는다는데 어찌 떠나지 않을까. 여행은 빛을 내서라도 떠나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래서일까. 공항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입국하는 사람들보다 출국하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편이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과감하게 실천하고 충전해오라는 의지의 통행증을 발급해주는 곳처럼 여행자들 등을 떠민다.
몇 년전 우연히 알랭드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부제가 붙은 책을 읽었다. 그 뒤로는 나는 인천공항에 들를 때마다 꿈을 꾸었다. 일주일동안 일곱빛깔로 공항에서 살아보리라.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새로우면서 괜찮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공항은 한달을 살아도 처음과 끝이 어디이고 모를 것같다.
알랭드보통은 히드로공항 소유주인 콜린 메튜스로부터 일주일공항체류 제안을 받고 공항에서 마련해준 구역에 책상을 놓고 글을 썼다. 일주일동안 그는 출발하는 사람들, 입국하는 풍경, 카페테리어나 화물구역, 숙소. 게이트 너머 광경 등을 관찰하여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렇게 써낸 그의《공항에서 일주일을》표지는 회색빛서린 파란 하늘과 불밝힌 밤공항청사를 절묘하게 담고있다. 보통사람들이 공항에 들어서면서 처음 받는 그 인상을 그대로 담았다.
공항처럼 큰 스케일로 세상의 모든 색을 수용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사막지대나 산악인, 바다나 강가에서 살아온 사람들,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마음과 신체에 빛깔을 지니고 온다. 그들이 공항에서 마주치고 스치고 섞이며 빛을 품어줄 때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어떤 기운을 받기도 한다. 다양한 국적 그들의 패션과 들고 오는 가방과 물건들은 그들 특유의 빛깔이 서려있다. 젊은 세대들의 여행가방은 연두색, 분홍색, 얼룩무의, 물방울 무늬 등 개성이 강하고 소핑객의 가방 , 팩키지여행사 표시가 붙은 가방들 속에 비즈니스맨의 가방은 절제심 때문에 오히려 눈에 띄기도 한다.
나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때 받았던 공항에서의 충격이 있다.
공항을 본 것도 처음이고 공항에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는데 선남선녀같은 항공사 직원들의 세련된 자태와 매너에 나는 한없이 줄어들어 이유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항공사별로 창구도 많고 여행수속의 간단하지 않음에 얼마나 겁을 먹었던가. 달러를 바꿔야 하고 비행기 좌석받고 줄 서서 짐부치는 일을 하면서 전업주부였던 나는 뜻밖의 다른 세상에 홀로 던져진 두려움을 가졌었다. 면세점에서 보았던 물건들도 어마어마했고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잘 나 보여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 채 호기심만 굴리고 있었다. 가장 크게 충격받았던 장면은 30대 남자의 도도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었다. 중요한 서류가 들어있을 것같은 가죽 가방의 절제된 분위기와 맞춤양복을 넣은 양복케이스를 들고 있는 그는 화려한 색상도 없는데 서 있기만 해도 자체로 빛나고 있어 초록색잠바와 하늘색 면바지를 입은 나를 무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누구이기에 이 공항에서까지 잘나보이는 것일까, 내 또래라고 생각되었기에 나는 그 앞에서 묘한 경쟁심과 좌절감을 가졌던 것이다. 그 뒤끝으로 나는 오랫동안 국내에서 일박 여행을 다닐 때도 정장을 담은 양복케이스를 들고 다녔다. 공항이 나에게 선물한 습관이었다.
공항은 미니멀한 대도시이이기에 여행자들에게 구석구석 탐험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뉴욕이나 파리, 서울같은 특성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대도시가 갖고 있는 번잡함 속에 익명성을 누릴 수 있고 무심함이 좋고 쇼핑공간과 속도감들이 사람들을 만족시킨다. 산만한듯, 분주한듯, 타인에게는 무심하기만한 공항이 만들어내는 빛깔은 그래서 더 신비롭고 매력적일지 모른다. 평상시에는 전혀 어울리지않을 것같았던 형광의 원색들까지도 공항은 멋지게 받아주고 이해해주고 어울리게 만들어준다. 뜻밖의 어울림에서 다시 생성되는 다양한 색들, 마블링처럼 번지고 퍼지고 흡수되면서 다른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어우러지며 서로가 뿜어내는 기운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공항은 다문화사회이고 혼혈의 출발지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한국이 만나고 베트남과 한국이 만나고 파리와 한국이 만나면서 우리들은 공항처럼 폭넓은 수용을 닮아가고 있다.
건축에서 색채지리학을 세운 프랑스 색채 디자이너 장 필립 클로드는 인천공항을 건설할 때 색채디자인을 맡았었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기학하적인 공항에 지상과 다른 세상을 이어주는 곳, 그는 공항이 품어야할 다양한 인종의 여정을 감지했던 것일까. 혼잡에 여백을 주어 조화를 이루게 한 그의 프랑스 북부식 따뜻한 색감이 공항 곳곳에 묻어있다.
공항이 없었다면 현대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들의 아버지였던 벽돌공은 자연의 빛으로 하나하나 사랑을 찍어 쌓아올렸지만
공항은 이제 그 자식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위해 붉은 망토를 두른 신의 모습으로 일곱빛깔 무지개를 세웠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자유의 빛, 생명을 불어놓고 힘을 주는 빛, 사랑을 주는 삶의 정거장으로 날마다 거듭 태어나고 있다.
권남희 수필가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1987년 월간문학 수필당선. 수필집 《육감&하이테크》 《그대삶의 붉은 포도밭》등 5권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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