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실험수필2015 발간 윤재천. 오차숙.권남희 외

권남희 후정 2015. 5. 29. 14:47

 

실험수필 2015년 수록작가 (권남희. 권현옥. 구회남. 김귀선. 김미원 .김미자.김산옥.김상미. 김용옥. 김익회. 김정화. 김정희. 김종완

김창식, 김희자. 남홍숙. 노정숙. 류창희.  마광수. 맹난자. 문윤정. 박경주. 박양근. 서숙. 신길우, 심선경. 오차숙. 윤재천. 이고운. 

이관희. 이명지. 이명진. 이미영. 이은희. 이자야. 정여송. 정일주. 조영숙. 조재은. 조정은 . 조후미. 주인석. 최이안. 피귀자 . 하길남

하정아. 한경희. 한기정. 한상렬 )  문학관 02-718-6810      

 

 

수록작품  1 

갈릴레이의 언어로 하루를 그리다

 

권남희 수필가

오전 5시 알람이 운다. 1218은 숫자에는 아둔하지만 특히 아침시간의 숫자 5를 부담스러워한다. 7시간의 수면시간을 채우지 못 한다는 점과 여름에도 차가운 기운을 주는 특성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간됨됨이를 말할 때 가능하면 숫자에 밝은 척하지 않아야 인간성이 좋다고 한다. 생명운동은 숫자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게 사실인데 은연중 숫자를 싫어하거나 천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기는 엄마의 몸속에서 10개월을 채우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정상인으로 살 수 있으니 數의 완결판이다. 몇 년 전, 6개월 만에 380그램으로 태어난 아기는 1분에 900회 진동하듯 주입하는 산소를 습도 100%인 인큐베이터 안에서 마시고 살아났다. 모두 數가 이루어낸 일이다.

파라오 무덤벽이나 ‘死者의 書’에는‘자신의 손가락 숫자를 모르는 사람은 이 배에(영생의 곳가는 길- 탈수가 없다’고 쓰여있다. 파라오처럼 신성한 인물만 숫자를 알았던 이집트에서는 수학이 또 다른 권력이었다. 30세에 천문대장에 오르고 역사상 3대 수학학자로 알려진 아르키메데스는 ‘말을 할 수 있기 전에 계산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먼저 인식하는 것이 숫자였을지도 모른다.

1218은 일어나자마자 10개의 손가락과 10개의 발가락 관절을 주무르고 15분간 샤워를 한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에 따르면 인간의 눈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인체의 황금비율이 배꼽을 기준으로 상하 1대 1. 618이라는 데 1218의 작달막한 키는 타인의 눈을 불편하게 하는 비율임에 틀림없다.

6시 아침 TV 뉴스를 틀어 그날의 기온을 확인하면서 10가지의 과일과 야채를 갈아 0.9리터의 쥬스로 마시고 스마트폰 만보기를 확인한다. 전날은 17,345걸음에 601.2킬로칼로리가 찍혔다. 900세대가 사는 아파트 55206호를 나와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천 걸음 정도를 걷는다. 가능하면 3번 이상 갈아타는 노선을 고른다. 걸어야 산다고 하니 편하게 앉아서 가는 M4101을 멀리하고 이리저리 갈아타며 전철로 움직여야 한다.

마을버스 전광판에 7:20분 1번 ,16번 1570번이 뜬다. 1번 마을버스를 타고 16개의 숫자로 인증된 카드를 대니 1000이 찍히면서 아래로 72000의 사용내역이 찍힌다. 15여 곳의 정류장을 지나 20분 만에 전철역에 도착한다. 플랫폼 전광판에는 298700 ,보정출발 298699 수원급행 등이 떠있다. B2에서 15인승 노약자 엘리베이터는 1숫자에 불을 켜고 둥실 오른다.

노약자석이 있는 -4와 -1을 지나 -2나 -3에서 기다린다. 승강장 안내 전광판에 시간이 뜬다. 7: 50분 前 역을 출발하는 전철은 2분이 지나지 않아 신호를 내면서 역사안으로 들어온다. 200미터를 19초 30으로 주파하여 세계신기록을 세운, 자메이카 육상선수 우샤인 볼트보다 빠르다.

1218은 4자리가 모두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앉지못하고 서있는 채 천정의 광고판을 본다. 성형외과 번호가 떠있고 그 옆에는 치과 견적비와 번호가 있다. 1588-0000. 1688-0000, 1577- 0000, 전국 어디서나 통하는 1588 발명은 혁신이었다. 컴퓨터를 발명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0과 1 이분법을 개발한 수학자 라이프니츠 공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1218에게 전철은 도서관이나 다를 바 없다. 7일에 두 권 정도 독서를 해야 하니 500 여 페이지 책도 마다하지않고 들고 다니며 포스트잇 메모까지 하게 한다.

10분쯤 갔을까. 165센테미터에 50킬로도 안돼 보이는 20대 여성이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놀란 1218은 119에 신고를 하고 그 옆의 173센티미터쯤의 30대 후반 남자는 여성을 안아들고 1218에게 같이 내리자고 한다. 119응급센터에서는 몇 번 칸으로 가야하는지 숫자를 말하라한다. 서울방향 수서역 2--3에 내려 1218과 젊은 남자는 아가씨의 스마트폰을 찾는다. 저장된 1번을 누르니 아가씨의 남자친구가 나온다. 아가씨의 소중한 1번을 보고 1218은 한동안 멍한 채 자신은 누구에게 1번일까 하는 생각에 빠져 버렸다.

사무실 도착은 두시간 후다. 8번 출구 길가 은행 ATM기에서 계좌이체를 한다. 돈이 연관된 숫자는 늘 불안하다. 잘 찍어야 한다. 1218은 많지도 않은 잔고지만 심호흡을 한다. 어느 증권사 직원은 실수로 15초만에 120억을 날리기도 했다. 0.8을 80으로 입력해서다. 거래번호 2714-A34-ㅣ8-**** 와 거래잔액을 확인하며 영수증을 챙긴다. 사무실은 B2에서 엘리베이터 2호기를 타고 1층으로 가야한다. 20층 건물은 엘리베이터도 지하주차장과 오피스건물 입구가 달라 갈아타야한다. 1층 로비에서 다시 1.2.3.4.5.6 호기의 엘리베이터 중 불이 켜진 숫자를 타고 오른다. 156길의 1906호실 12평은 4개의 책상과 하나의 회의용 테이블. 150리터 냉장고 하나로 미어터지는 느낌이다. 천 여 권의 책으로 둘러싸인 책상에 앉아 도착한 10권의 작품집 겉봉을 확인한다. 110-350, 110-340, 158-720, 448-530 모두 발송된 지역코드이며 우체국 소인에는 년도와 날짜와 요금 1830. 1580518 등 숫자들이 찍혀있다. 02-532-8703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기에는 07054224497 숫자가 뜬다. 인터넷 국제전화로 무료이다. 협회 가입회원을 위해 계좌번호를 불러준다. 414-007-01-1234567 은 또 다른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존속할 것이다. 천명의 회원이 모두 한곳에서 만난 적은 없지만 컴퓨터 검색으로 서로는 익히 알고 있다.  

1218의 퇴근길은 아침 출근길을 거슬러 가는 길이다. 지하철 2호선과 9호선 3호선 환승을 위해 9101 인증카드를 찍고 언제나 2-3에서 탑승한다. 30-40인승 마을버스는 1. 2. 5 . 11 .15. 1-1 정도의 숫자와 30분 이내의 시간으로 주민들의 순간이동을 돕는다. 중학생 서너 명이 버스를 타자마자 욕으로 대화를 이어가는데 주변사람이 없다는 듯 스스럼이 없다. 버스 안 어른들은 모두 들리지않는 척하느라 눈까지 감고 있다. 교사들도 욕을 듣는 세상에 상관없는 어른들이야.

×나. × 까, ×발, × 새끼.... 시작부터 끝까지 욕을 섞지 않으면 내용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1218은 만보기를 흔들어 그들의 욕을 따라잡으려하지만 만보기는 숨을 헉헉 대며 숫자를 대지 못한다. 10분 동안 학생 한 명이 10번 넘는 욕을 쓰고 있다.

비인간적이라 간혹 욕을 듣는 숫자는 욕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의 커다란 언어는 숫자라고 한 천문학자, 수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도 있고 자신의 묘비문구를 수학의 1차방정식을 풀어야 나이를 알 수 있게 한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토스도 있다. 날씨를 미리 알고 비행기가 뜨고 우주선 발사가 가능한 것은 數의 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