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도시
권남희
이른 아침이다. 전 날 밤 내린 비 덕분에 물을 흠뻑 먹은 시멘트 틈틈이 솟은 풀들이 파릇파릇 촉촉하다. 물 만난 생명 그 생기는 아침 햇살만큼이나 가슴을 벅차게 한다.
운현궁 정원을 들어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광경을 만났다.
참새일까. 서울에만 산다는 직박구리 텃새일까. 갈색털의 한주먹도 안 되는 새 한 마리가 손바닥만한 웅덩이에 부리를 박고 고인 물을 부지런히 쪼아 먹고 있다. 행여 새가 놀라서 그나마 물도 못먹고 날아가버릴까 나는 그대로 멈춘 채 새를 바라보았다. 아기같은 새가 마시는 물은 빗방울 한방울이나 될까. 어서 다른 사람이 오기 전에 흙 범벅인 물이라도 실컷 먹기를 바라며 힐끔 거린다.
밤사이 고인 물을 찾아든 새를 보니 물 한 방울 얻기 힘든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근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물 고인 틈새가 없으니 작은 새의 부리를 어디다 들이박겠는가. 도심빌딩에서 먹을 물은 새의 눈물만큼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거리의 나무들도 도시계획 속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어쩌다 날아오는 새를 위해 있는 힘껏 몸을 흔들어도 이파리의 물방울이나 굴려 보낼 뿐 힘이 없다.
철근과 유리와 시멘트.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도시공간은 한 마리 새에게도 무심하고 야박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보다 흔해진 커피 가게 앞에서 빨대가 꽂힌 일회용 컵이나 페트병을 쪼는 비둘기도 물을 찾는 것인지 사람이 다가가도 날아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서 물은, 길을 가다가도 아무 집이나 들어가 ‘물 좀 마시자’고 청할 수 있는 인심의 얼굴이었다. 목마른 사람에게 흔쾌히 물 한 대접 건네주던 시절이었으니 학교에는 당연히 수도꼭지가 달린 급수대가 운동장에 있었고 거리에도 지나가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가 있었다. 시민이 많이 모이는 공설운동장에도 급수시설은 마찬가지로 설치되어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기억나지 않는다. 거리 곳곳에 설치되었던 수돗물 음수대가 사라져버린 게.......
플라스틱 병에 담은 생수를 판매하는 매점은 있어도 수돗물 급수대는 보이지 않는다. 행사를 위해 장소를 빌려 써도 생수부터 사들여야 준비가 되고 우리나라든 외국이든 단체관광을 시작하면 으레 생수부터 나누어 준다.
세계 3대 광천수의 하나였던 초정약수도 상품으로 판매되자 탄산이 사라졌다. 88올림픽 당시 외국선수들 때문에 생수를 잠깐 팔았던 우리나라는 다시 물판매를 법으로 금지했는데 몇 년후 국회가 나서 ‘국민행복추구권과 직업선택권 ’을 챙겨준다는 명분을 세워 생수사업을 거들어주었다. 목마른 도시는 사막이 되고 오아시스는 당연히 마트로 환생하여 물을 사야하도록 만든 것이다.
멀쩡한 수돗물은 엄격한 수질기준을 지켜도 먹을 수 없는 물이 되었다. 수돗물은 아무리 이름이 이뻐도-아리수, 빛여울수, 순수 등- 허드렛물이고 그 물을 이용하는 계층은 사회낙오자인양 분위기가 묘해졌다.
물은 개인 재산이고 사치품인가. 공기처럼, 햇빛처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신의 선물인 물이다. 같은 우물에서 만든 생수 값이 허풍일 게 분명한 작명에 따라 5배나 차이가 나기도 한다는데 어쩐 일인지 눈감고 봐주는 생수이름도 가관이다. ‘글레이셔마운틴 내추럴 빙하산속의 자연샘물’은 뉴저지 물이고 ‘ ’알래스카의 특급빙하‘ 생수는 미국 주노시의 수도배관 111241번에서 취수하는 물이고 ’요세미티생수‘는 로스엔젤레스 수돗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브랜드에 휘둘리며 비싼 값으로 물을 사먹고 워터 소믈리에( 물감식가)가 생수바를 차려 수지맞는 세상에서 생수는 물 만난 고기다.
앞집 현관에는 주기적으로 주문한 외국업체 생수가 몇박스씩 쌓여있다. 설마 외국 유명스타가 목욕까지 한다는 그 생수를 직구한 것은 아닐텐데.
지하철승객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에서 노숙여성이 深海(심해) 암반수북극샘물 광고 띠가 붙은 페트병에 물을 담는다. 어쨌든 심해 암반수 페트병을 들고 물을 마시면 암반수가 되는 것이다. 서울텃새 그녀는 브랜드만 남은 전설의 북극샘물 페트병을 들고 당당하다.
* 생수이름은《생수 그치명적 유혹》피터.H글랙지음 추수밭출판에서 발췌했습니다.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 >수필 등단 .현재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작품집《그대삶의 붉은 포도밭》《육감&하이테크》등 6권
제 22회한국수필 문학상. 제 8회 한국문협작가상
이메일: stepany12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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