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의 독서일기

불면증으로 런던시내를 관찰하여 글을 쓴 찰스디킨스<밤산책> 권남희 수필교실 추천도서

권남희 후정 2015. 3. 22. 20:35

 

 

찰스디킨스 밤산책 은행나무 출판 옮긴이 이은정   (권남희 수필교실 추천도서) 

찰스디킨스(1812-1870) 빅토리아 시대 영국 최고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손꼽힌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채무관계로 투옥되는 바람에 일찌감치 학업을 중단해야 했지만 17세의나이에 언론계에 입문하여 예리한 눈과 재치있는 글로써 저널리스트로 성공한다. 이후 직접 잡지들을 만들고 편집했으며 기사와 소설들을 연재하여 ‘국민작가’로 자리 잡았다.

《올리버트위스트》1839, 《크리스마스 캐롤》1843, 《데이비드코퍼필드》1850,《어려운 시절》1854, 《두 도시이야기》1859, 《위대한 유산》1861 등 그의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았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문학적로 재평가받았다. 그는 글로 당대 사회를 풍자했을 뿐만 아니라 구민원을 운영하는 등 지속적으로 복지사업을 펼치기도 했다. 소설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집필중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밤산책/ 길을 잃다/ 채덤 조선소/ 와핑 노역소 / 동쪽의 작은별 / 아마추어 순찰기 /

마권 판매소/ 죽음을 거래하다

역자해설 175-- 193 저널리스트로서의 찰스 디킨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에세이는 디킨스 자신이 창간한 두 잡지 <일상적인 말들>과 <일년 내내>에 게재된 것들이다, 그 제목만 보아도 19세기 런던 사회의 갖가지 병폐와 디킨스의 다양한 사회적 관심사를 짐작 할수 있다. 공장이나 제철소에서 쥐꼬리보다도 못한 임금을 받는 가난뱅이들을 사기쳐 주머니를 터는 마권판매소, 집에서 삯일을 하는 사람들, 남이 받은 동냥까지도 빼앗으려고 달려드는 오십명의 부랑아들, 런던에서 하루종일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들, <아마추어 순찰기>에서는 평소 범죄와 경찰제도에 관심이 많아 실제 순경들과 함께 야경을 돌고 사건을 기록해 경찰보고서를 내기도 했던 , 말 그대로 완벽한 신문기자였던 디킨스의 모습도 엿볼수 있다. 찰스 디킨스는 성공한 소설가이기 전에 유능한 기자였고 20세기 초까지도 영국 최고의 의회 전문기자로 알려져 있었다. ......... 카를 마르크스도 그가 혁명을 옹호하거나 규정된 정치강령을 따르진 않았어도 “ 전문 정치인이나 정치 평론가, 학자들보다 더 많이 정치, 사회적 진실에 대해 말했다.” 고 인정했다. 실제로 35년의 활발한 활동경력 중에 그 쓴 논픽션은 백만단어가 넘었다.

디킨스가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처음 쌓기 시작한 것은 1829년 <닥터스 커먼 코트>라는 언론사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면서부터였다. 2년 전인 열다섯 살 때 이미 어머니 손에 이끌려 법률회사 사환으로 들어갔지만 업무에 싫증을 느껴 독학으로 속기술을 배웠다. 속기술은 그가 기자로 있는 내내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1832년 만 친척인 존배로가 막 창간한 <의회의 거울>이라는 신문사에 들어가 의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하는 기자가 되었을 때도 속기술 덕분에 빠르고 정확하게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기자로서 그는 의회에서 의원들간에 개혁이라든지, 노예 매매폐지, 공장 노동자의 보호를 위한 입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토론 내용을 기록했다. 그 때 대부분의 정치가가 “ 별의미도 없는 말을 지껄이며 시간을 축내는 거만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국을 더 살기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진정한 관심을 가진 듯 보이는 몇몇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

디킨스는 뉴게이트 감옥을 방문했을 때 특히 감옥의 젊은여성들이 겪는 고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대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사랑을 받지못하고 어려서부터 거리를 떠돌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거나 매춘의 길로 들어서는 여성들의 악순환을 정확히 이해하고 훗날 (1846년 ) 부유한 금융자산 상속자 안젤라 버뎃 쿠츠와 뜻을 모아 매춘부와 여성 노속자들을 위한 구제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디킨스는 캐서린( 스코틀랜드 태생의 교육받은, 문학에 조예가 깊은 여성이며 <모닝 크로니클>지의 동료기자 조지호가스의 딸 )과 결혼한다. 조지호가스는 디킨스를 “ 캐릭터와 태도를 세밀하고 정확하게 관찰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치켜세웠다. ......... 188페이지가운데( 어릴적부터 노래와 연기에 관심이 많았던 디킨스는 극단을 창단하여 184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연극작품을 공연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1853년부터《크리스마스 캐럴》을 가지고 첫 낭독회를 연후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낭독회를 열었다. 낭독회는 해외에서까지 인기가 있어서 스코틀랜드와 미국에서도 열었고 뇌졸을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디킨스가 가장 애착을 가진 활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