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강민 시인을 만나다

권남희 후정 2007. 4. 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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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선생님 사진을 이제야 올립니다 .직접 찍어서... 2007년 12월 2일  

권남희수필가의 

   작가를 찾아서

허버트미트갱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전 세계 문호 66인 ( 아이작 싱어, 윌리암 골딩. 사무엘 베게트, 귄터 그라스등 )을  인터뷰하여 ‘작가를 찾아서’라는 책을 냈다.  아쉽게도 그가 택한 작가들에는 아시아가 빠져 있다.  다른 분야보다 아직도 소통이  더딘 우리 문학의  한계를 깨달으며 세계로의 도약을 꿈꾼다.

        

  시인 강민 선생님


 2006년 가을이 익어가는 11월 초  인사동 전통 찻집에서 선생님을 만났다. 간간이  멀리서 뵙기만 했을 뿐 찻잔을 앞에 두고 가까이 하기는 처음이다. 만나자마자 선생님은 찻집이 어둠침침하고 답답해보인다며  빨리 나가자고 하신다.  책도 읽을 수 없는 장소라며 불편해하시는 선생님은 ‘툇마루’라는 허름한 식당을 추천한다. 소년같은 순수함과 상대를 배려해주는 따뜻함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연희 수필가.시인(문파 문학 발행인 )이 도착하자 툇마루로 장소를 옮겼다.  된장비빔밥과 함경도식 가자미식혜를 놓고 담론을 펼친 세시간은 현대문학사에 아주 귀중한 만남으로 새겨지리라. 

      

강민 시인에게서는 독일의 시성 괴테를 느끼게 한다. 인상파적인 초상을 그려낼 수 있는 외모부터 닮아있고  시인다운 섬세한  눈길을 느끼게 하는 점이 그러하다. 평소에 선생님을 뵐 때마다 선생님   뒤에는  큰 산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하곤 했는데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스승 복이  많은 점이 그렇다. . 동국대학에 입학하여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조지훈 시인’과 양주동 박사를 스승으로 모셨다니 부러운 눈길로 선생님을 바라보며 그 시대의 문학적 기운을 상상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문단의 내노라하는 작가들이 모두 선생님과  선후배 관계에  있다. 민족작가회의 회장인  신경림 시인은 동기동창이고 구중서. 신기선  백기완 모두 친한 친구이다.  작고한 오학영 희곡작가는 후배이고  황명시인과는 늘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지연희 : 선생님은 평소에도 말씀을 잘 안하시지만 정이 느껴지거든요. 이해심이 있고 사랑이 깔려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도 서울문인클럽멤버지요?

강민  :  당연하지요. 그리고 신봉승, 황명 모두 창립멤버지요.  글도 잘쓰고 실력있는 문덕수시인도 있고,

         조병무 평론가는 한참 아래이구요 .

지연희 : 요즘도 작품 많이 쓰시는지요

강민:   다작은 아니지만 옛날보다 다작을 하는 편이지요.  오래된 시집으로 ‘물은 하나되어 흐르고’ 가 있고            얼마 전 10월 한달 동안  인사동 갤러리 북스에서 시화전을 가졌거든요.     그림은 성춘복 시인 등 여러사람이 그려주었지요. 민족작가 자문위원있던 이행자 시인(전태일 문학상     제 1회 수상자)과 공동 전시를  했습니다.

지연희 : 시가 산문화되는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민 :   그래서는 안됩니다. 시는 시여야하지요. 산문시라고 산문이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살아야 합니다. 나도 산문시를 쓰지만 산문시도 시정신이 바탕이 돼야 합니다.

지연희 : 선생님이 처음 문단 활동을 하실 때와  지금의 문단은 많이 변했지요?

강민 :   처음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이 200명쯤이었는데 이제 몇 천명으로 팽창되고 문인협회

     몇백명 시대에서 만명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조지훈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시인으로 가입하는  세상입니다.   시인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즉흥적 감성으로 시를  손재주로 쓰는 것은 고등학생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지연희 : 민족작가회의와 한국문인협회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강민:  바람직한 일은 합하는 일이지만 안된다면 서로 비방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모두 존립하면서 이슈가  있을 때 힘을 합하면 되지요 . 작가회의나 문인협회나 편협된 사고를 뛰어넘어야 진정한 문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소설가 이문구와도 친했고  고은 시인도 친구지만 화합을 바랍니다. 한국문 인협회의 윤동주 문학상 수상  때도 작가회의에서 왔다 갔지 않습니까.  서로 생각은 다르지만  인간 적으로 대해야하지 않을까요.

지연희 : 선생님은 사관학교도 다녔다고 아는데요 .   

강민 :  공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사실 국회의장을 지낸 이만섭, 전두환, 노태우와 동기생입니다.  진해에서 51년도에 입학했는데 당시는 서울대학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돈없고 배경없는 집안의 자식들 이 갈 데라고는 사관학교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졸업하기 전 퇴교를 했습니다.    이만섭도 당시 퇴교를 했지요.  1.4후퇴 때 온양서 대구까지 걸어갔습니다. 눈이 아주 많이 왔는데    눈구덩이를 걸 어가면서 반 이상이 굶어죽고 얼어죽었습니다. 보급품은 없고 군인이 총한 번 쏘아보지 못하고 후퇴하 다가 죽어가는데  차라리 군을 해산시켰으면 그렇게  많은  젊은이들이 죽지는  않았을거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이승만과 정일권이 부대에 와서 ‘그대들은 나라의 간성이다’라고 하는데  이승만 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근래에 들어서는 회상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미로’ 가 1.4 후퇴  때를 다룬 시입니다. ‘경안리에서’도 그렇구요. 교과서에도 없는 이야기를 문민정부 들어서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연희 : 지금 사시는 곳이 공기도 좋고 글쓰기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강민 : 공기만 좋아요. 거의 모든 활동은 서울에서 하니까  이동할 때는 불편한 점이 있지요. 청량리 역에서    기차타고  가서 다시 택시나 승용차로 20여분 가야한 만큼 산속입니다.

지연희 : 선생님 삶 속에 ‘시’는 무엇일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강민 : 살면서 시는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동경으로 일본책을 많이 읽었는데    초등학생 때 대부분 친구들이  장래희망 란에  ‘육군대장’ ‘총리대신’을 써 넣을 때 유일하게 나 혼자    ‘문학가’라고 썼습니다 . 하루는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문학가가 무얼 하는지  알고 쓴거냐’고  묻더     군요. 글쓰는게 좋고 SF 소설가가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 유명 소설가  작품에     ‘보이지 않는 비행기’ 를 읽고 푹 빠졌습니다. 생떽쥐베리를 알고 공사에 들어갔을 때 비행기를 몰고싶다     는 꿈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생도일 때 ‘작고 시인선’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가 기합을 받기도 했지요.

지연희 : 동국대에 들어간 후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 대들었다는   후문도 있던데요

강민 : 내가 고집도 있는데다가 사실은 조지훈 선생님에게 추천을 받고 싶었기에 객기를 부렸던 것입니다.

 미당   선생의 추천을  거부했습니다. 나중에 선생에게 ‘ 예쁜 여자가 오면 추천해주고 왜 안해주냐’고     억지를   부렸는데 ‘너같이 건방진 놈을 누가 해주냐 ’며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 때 인생이 무언지 미당    선생에게 배웠습니다.  후에 자유문학 (발행인 김남수) 편집장으로있는  박용숙 소설가에게  최인훈 소설가가  부탁을  하여  내 시를 실어주어서 문단에 나온 것이지요 . 그후에 주부생활 기자로 65년에 입사했는데  소설가 구혜영도 기자로 입사했어요.  학원 편집부국장도 거쳤습니다. 그 때 마광수 글도 많이 실어     주었지요. 

지연희 :오늘  선생님의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끝으로 ,  작가의 길을 가기 시작하는  신인들에게   주고싶은  말은  무엇인지요       

강민 : 우리가 문학공부를 할 때는 ‘시문학사’와 ‘한국문학사’를 두루 공부했다. 이러한 과정을 생락하고 재주만     가지고 문학을 하려드는 경향이 보입니다..  공부하는 후배작가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지연희 : 한 달에 한번 저희 나름대로 ‘작고문인’을 위한 재조명 시간을 가지면서 작게나마 노력하고 있습니 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강민 : 좋은 일입니다. 먼저 인간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니까요. 무엇이든 알아야 문학도 할 수 있는거니까요.  남북 통일에 대한  생각도 있어야 하고 . 환경이나  생명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포용의 힘도 문학에서는 꼭  필요한  조건입니다. 한국사람은  용서할 줄을 모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포용입니다. 울타리를 치지말았으면 합니다.    

                           

툇마루에서  선생님은 아주 진지하게 , 교과서에도  없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님을 뵐  때마다 무언가 큰 산처럼 느꼈던 점이 모두 풀리고 우리는 일어섰다. 청량리에 가서 9시 밤기차를 타야 한다며 가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행복한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