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글
마티스는 그림을 통해서 어항을 말하고 있다. 어항 장식도 없고 안에 수초도 없는 소박힌 어항을 그려 전체적으로 절제된 톤과 꾸밈없는 선, 튀지않는 색상으로 도시 소시민의 삶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림에서 바깥 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창에 관심을 가진다. 바깥에는 비슷할 지 모르는 건물이 있고 마차가 보이고 잔디의 초록빛깔에서 다듬어진 파리의 어느 구역을 상상한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은 창을 통해 바깥 풍경과 소통을 시도한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어느 겨울 창문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던 경험을 떠올린다
거리에서 접근해온 남자대학생-스스로 서울대라 소개함 - 을 따라 호기심반, 모험심 반 겁도없이 그의 친구가 있다는 청계천 어느 봉제공장을 갔다. 3층쯤 되는 곳인데 들어서는 순간 '이거 아니구나'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묘하게 눈빛을 빛내는 그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차하면 창으로 뛰어내릴수 박에 없다는 판단으로 창문에 붙어서 바낕을 내다 보았다. 맞은 편은 바로 평화시장이고 아래로는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여차하면 뛰어내릴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얼마나 풍겼는지 그들은 눈짓을 주고 받더니 날더러 나가라고 했다. 십년 감수한 기분으로 뛰어내려오며 돌아서서 차마 그 창문을 바라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뒤 청계천 을 지날 때마다그 창문을 찾았지만 어느 창문인지 알 수 없게 건물이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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