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한국수필 2월호

권남희 후정 2009. 3. 10. 13:06

 

 

2009. 월간 한국수필2월호 통권 169호 발행인 유혜자이사장 . 편집주간 권남희 .사무국장 서원순 .기획실장 이철희. 편집차장 김의배 .사진기자 김혜숙 정기구독 신청 532-8702 이메일 kessay1971@hanmail.net

 

<한국수필> 월평 (2009. 2월호)

                 수필에 있어서 독자성과 보편성

                                                         鄭 木 日


 수필은 이제 수필가의 전유물이 아닌 만인의 공유물이 되었다. 인터넷시대엔 말보다 글이 유용한 소통 수단이다. 인터넷에 소통하는 글들이 대부분 수필의 영역에 속한다. 서간문, 일기문, 감상문, 기행문, 댓글, 칼럼 등이다.

 오늘날에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독자가 구분되지 않고, 작가이면서 독자이고, 독자이면서 작가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누구나 수필을 쓰고, 누구나 저술을 남기는 시대로 변모한 것이다. 예전엔 문학적 자질을 가진 작가만이 글을 썼지만, 인터넷시대엔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필가의 수필은 일반인이 쓰는 생활수필과는 달라야 되며, 차별성을 강요받고 있다. 참신성, 독자성, 개성, 전문성, 문학성이 없으면 굳이 수필가의 글을 누가 읽으려 들 것인가? 수필시대를 환영하면서, 일반인이 쓰는 생활수필과 확연히 차별성을 갖는 수필을 내놓아야 한다는 게 수필가들의 고민이요 타개해야 할 방향성이라고 할 것이다.

 ‘문학은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 경험의 표현이다. 고도로 압축되어 있어 그 내용의 농도가 진하다.’

 이 말은 피천득 선생의 <순례>라는 수필의 서두이다. 신변잡사를 소재로 할 지라도, ‘금싸라기를 고르듯이 선택된 생활 경험’이어야 하며, 문학적인 형상화가 돼야 좋은 수필이랄 수 있다. 독자들은 차별적인 주제, 소제, 문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길 바란다. 누구나 경험하고 쓸 수 있는 내용의 글이라면, 굳이 시간을 낭비하며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수필가들은 모름지기 자신의 수필이 남다른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한다.


 1. 정호경의 <폐선>

 원로 수필가 정호경 선생이 자선한 대표작 <폐선>을 다시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폐선>은 항구의 옛 풍경과 정서에 대한 회고와 현대 항구의 모습을 대비시켜 고도의 물질문명이 낭만과 그리움과 향수마저 앗아간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이들 폐선의 구조나 시설로 보아 옛날에는 어로의 대망을 품고 대양의 험한 파도를 헤치며 젊음의 꿈을 한껏 펼칠 법도 한데, 녹슨 선체의 갑판 위에는 때 묻은 이불 뭉치가 내팽개쳐 져 있고 , 낡은 밧줄이 여기 저기 쳐져 있는 시커먼 기름통들의 황량한 풍경은 마치 지금의 늙어버린 내 몰골을 보는 듯하여 마음이 허전하다. 누구에게나 꿈 많고 화려했던 젊음은 있었겠지만, 나의 경우 과식으로 설사 한 번 하고나니 내 인생이 다 가고 말았다.

                                                      <폐선>일부


 이 작품은 옛날 항구와 현대 항구의 대비, 폐선과 늙은 자신을 결부시켜 입체적인 구성을 꾀하고 있다. 택시 운전사가 산책하는 작가의 앞을 가로막고 “늙은 놈이 뭣 하러 밖에 나와서 얼쩡거려?”라는 폐륜에 가까운 폭언을 듣는 장면에서 큰 충격에 휩싸이고 만다. 사라져가는 정서와 낭만, 그리고 인정의 야박함에 대한 탄식을 통해 물질문명으로 인해          황폐해진 심성과 삶의 풍경을 그리면서 정서와 인간다운 공동체 회복을 제시한 명작이다.

2. 김은자의 <겨울강가에서>

이 달의 화제 작가로 선정된 김은자의 <겨울강가에서>는 삶과 인생을 돌아보는 사유가 돋보이는 글이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여기에 삶에 대한 성찰과 의미 부여가 있어야 한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에 대한 진지함이 묻어 있다.


 물결무늬를 잔잔히 그리고 있는 모래밭으로 발자국은 이어지고 있다. 방금 이곳을 지나간 듯 선명하게 강을 따라 계속 찍혀나가고 있다. 작은 노루 발자국 따라 찍히고 있는 내 발자국도 누구의 가슴에 흔적으로 남겨질 수 있을지….

                                                    <겨울 강가에서>일부


 3 육상구의 <손님맞이>

 <손님맞이>는 ‘새 손님’인 손자 출생을 지켜보며 쓴 글이다. 손자 출생을 통해서, 조손(祖孫)의 혈연(血緣) 관계가 이뤄짐을 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우주의 섭리를 떠올려 준다. 이 글은 갓 태어난 손자를 맞으면서, 알뜰했던 할아버지와의 관계와 사랑을 회고하고 있다.

 조손관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하고 사랑스런 사이임에도, 핵가족시대에 진입하면서 조손관계의 단절현상이 심화돼 노인들은 고립과 소외를 절감하고 있다. 손자에게 삶의 귀감이 되고자 새 각오를 가지는 할아버지상이 있는 한, 하늘이 맺어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손관계는 이어지고 회복돼야 할 것이다.   

 

새 손님을 맞이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그 누구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반가운 손님이다. 나는 특별하게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처음으로 맞았다. 내 인생에서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맞이한 귀한 사람이다.

 그는 태초에 태어나 긴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우주의 신비한 베일을 벗고 내 앞에 나타났다. 오래 동안의 쌓인 피로를 덜어내려는 듯 쉴 사이 없이 전신 운동을 한다. 생소한 사람들이 낮이 설은 듯 실눈을 떴다 감았다 두리번거린다.

                                                  <손님맞이> 일부

 

4. 오양수의 <역사의 숨비소리>

 우리나라에 산재해 있는 남한산성, 화성 등 성(城))의 사적답사를 통한 발견과 깨달음을 담은 수필로 역사와 문화재를 보는 관점의 예리함과 통찰력이 돋보인다. 성벽(城壁)의 축조는 지키려는 쪽과 빼앗으려는 쪽의 대치와 대립을 보여주며, 전쟁과 평화, 생사의 두 얼굴을 간직하고 있다.

 <역사의 숨비소리>는 성의 답사에서 성벽의 축조를 명령한 사람과 이를 따랐던 민초들의  역할과 삶을 생각하면서 령(令)과 순시(巡視)의 관점에 통찰한 글이다. 역사 현장과 작가의  역사관이 뚜렷하다. 지휘자들은 이름을 남기지만, 노역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이름 없는 민초들은 자취가 없다. 역사는 언제나 영웅의 자취만 남기지만, 작가는 보이지 않는 역사의 숨소리와 수많은 민초들의 삶을 되살려 준다.


 남한산성과 화성을 주의 있게 탐색하다 보면 금세 안다. 공격과 방어를 숙명처럼 안고 우리 삶이 그 명을 이어가고 있음을. 령과 순시의 성곽 안팎엔 길이 나있고 버팀과 쳐부숨 사이에서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리라.

                                               <역사의 숨비소리> 일부

                                             


5. ‘한국수필작가회’- 80년대 등단작가 특집

 가장 무게가 실린 특집이다. 우리 수필 전성기의 한 핵심을 보여주는 <한국수필>지의 역할과 그 잡지를 통해 80년대에 등단한 수필가들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는 것은 수필문학사의 한 단면의 진단과 평가 작업이 될 수가 있다.

 이 번 특집에서 한영자의 <휴일> 김수자의 <정직함의 알레고리> 김경실의 <섣달의 봄> 허정자의 <향기 자욱> 이희수의 <콘트라베이스처럼> 신일수의 <모과> 변영희의 <한잔의 따순 차> 임재문의 <왕송 호수의 꿈> 한동희의 <마음에 심은 나무> 임창순의 <물싸움> 고동주의 <마음 밭에 핀 꽃> 김의순의 <신앙과 기도> 이진화의 <엄지통> 최원현의 <살아있음의 행복> 임병식의 <소음의 해석> 차혜숙의 <기축년을 맞아> 등이 발표되었다.

 80년대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수필가들은 오늘날 중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 여년의 창작생활을 통해 개성 있고 독창적인 세계를 확보한 수필들을 발표해 왔고, 이번 작품들은 한결 같이 문학수필의 방향성과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지면 관계로 일일이 조명하여 언급할 수 없어 아쉬움을 갖지만, 독자들에게 귀한 선물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