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월간한국수필 1월호

권남희 후정 2009. 3. 10. 13:10

 

 

2009. 월간 한국수필 1월호 통권 166호 발행인 유헤자이사장 . 편집주간 권남희 .사무국장 서원순 .기획실장 이철희. 편집차장 김의배 .사진기자 김혜숙 정기구독 신청 532-8702 이메일 kessay1971@hanmail.net

수필에 있어서 자기 목소리

-<한국수필> 1월호를 읽고

하 길 남

1, 머리말

문학은 모름지기 제 목소리를 낼 줄 알 때,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아류들은 신변잡기가 된다. 흔히 듣는 말로, 이름만 가려놓으면 어느 작품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개성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사는 일이 모두 엇비슷하기 때문에 사건 중심으로 쓰여 지는 일상, 그 수필의 곡절이야 말로 자기 나름의 개성적인 목소리가 담겨지지 않는 한 그 글은 도로에 거치고 말 공산이 클 수밖에 없다.

소설은 허구에 의한 재미를 빌미로 독자들을 갈무리할 수 있다. 시 또한 정서의 상징적 유희나 그 재치 등에 의해 감동을 유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을 바탕으로 한 수필은 일상적 사건을 모태로 하는 까닭에 상상력이나 기법상의 아이디어 이외 자기만이 터득한 개성적인 제 목소리를 내지 않는 한 성공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2, 김애자의 수필 <숨은 촉>

이 수필은 다리 놓는 이야기나 대웅전 짓던 일화, 남대문보수공사 과정 등을 쓴 평범한 수필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매우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토속 말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실험성이 곁들인 수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쓰여진 순수 우리말이나, 잘 쓰지 않는 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어마지두(충격으로 놀라 정신이 얼떨떨한)

(2) 각단지게(각단; 일의 갈피와 실마리, 우리말큰 사전이나 겨레말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음. 그러나 ‘각단지게 맘먹고’라고 했으니, 일의 갈피와 실마리를 잡고 일에 임하는 결심, 그 태도를 말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3) 묵새길(사전에 ‘별하는 일 없이’로 나와 있으니, 그냥 ‘묵히고 말’로 해석된다)

(4) 물배(물만 먹고 채운 배)

(5) 깨부수고

(6) 가칠장이(단청하는 사람)

(7) 반자(방이나 마루, 천정 등을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시설)

(8) 공포(삼배 헝겊 등 7가지 뜻이 있다. 한자를 적어놓아야 할 것이다)

(9) 부레풀(민어의 부레 ‘물고기의 뱃속에 있는 공기 주머니’로 만든 풀)

(10) 금어(불상을 그리는 사람; 음이 같은 말이 몇 가지 있으니 한자를 써넣어야 좋았을 것임) (11) 염엽한(나아가는 모양이 느림)

(12) 이에짬이(두 물건이 맞물려 이은 짬) 등 우리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들을 닦아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수필에서 또 하나 간과하지 못할 구절은,

목공의 귀재는 새를 깎아 하늘에 띄운다고 한다. 어떤 이는 그 새를 통해 하늘과의 통신 을, 어떤 이는 접신을 꿈꿀 것이다.

라고 전제하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숨은 촉’을 끼우는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촉’은 보이지 않으나 ‘건물의 균형을 잡아주는 데는 없어서 안 될 절대의 가치를 지닌 쐐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수필의 골자인 ‘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하늘의 뜻을 묻는 의식도 유념하게 된다. 그렇다. 수필에서 이 쐐기를 박지 못한 어설픈 작품은 성공하지 못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힘의 정수리인 배꼽에 힘이 실려야 하는 것이다. 이 수필은 우리들이 흔히 쉽게 읽고 잊어버리는 작품과는 격이 다른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수 우리말을 골라 쓰면서, ‘슬골’(膝骨)이란 한자말을 왜 두 번씩이나 썼는지 독자들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괄호 안에 한자를 넣지도 않았다. 늘 순수 우리말을 썼듯이 ‘종지뼈’라는 토속말을 써야했을 것을 말이다. 왜 이 말만은 한자말로 썼을까. 작가의 착각이 아니라면 여기에 무슨 숨은 뜻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 말미에 소이부답(笑以不答)이라 했는지 모를 일이다. 웃으면서 답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런 숙제가 흠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수필에서는 귀한 것이리라.

3, 김용대의 수필 <낙엽지는 소리>

소리를 소재로 한 수필이라면 다분히 이색적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변별성, 그 차이는 마침내 수필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은 무리들 중에서 뛰어나거나 뒤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리는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는가하면 들을 수 없는 소리도 있다. 너무 작은 소리도 못 듣지만, 너무 큰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등은 듣지 못한다. 이렇듯 사람의 고막은 묘한 것이다. 화자는 우리들이 사는 하루라는 단위를 갖가지 소리, 그 상징 등 화음의 세계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1) 풀잎에 맻인 이슬을 떨어뜨리는 실바람 소리 (2) 건강한 아이가 세상에 나올 때 우렁

차게 울어주는 소리. (3) 재 너머에서 하루를 여는 닭 우는 소리 (4) 크고 작은 개 짖는 소리 (5) 여기에 화답하는 까치 소리 (6) 황산벌에서 장열하게 전사하던 계백장군. (7) 방방곡곡에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던 갈망. (8) 공수대원에게 무참히 죽어가 던 민중 (9) 권력을 쥐고자 하는 야합의 속삭임 (10)입에 풀칠하기 위한 노점상의 쓰라림 (11) 소년소녀들의 풋사랑을 나누는 간지러운 사연, 그리고 화자는

(12) 나뭇잎이 화르르 떨어지는 소리를 완벽의 소리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화자는 또 나뭇잎 소리도 계절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그리고 ‘낙엽 지는 소리에도 달관이 가득하다고 술회하고 있다. 그 소리에는 짧아지는 나의 생도 들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낙엽으로부터 삶의 진리를 배울 걸’ 하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이러한 소리의 운무, 그 작열하는 메아리 속에 빛나는 삶의 파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삶의 곡절을 화자는,

앳된 여승이 가슴 저리게 서러워진다.

고 후렴처럼 절규하고 있다. 이렇듯 소리로 엮어본 세상은 오히려 적막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수필의 제목이 ‘낙엽 지는 소리’인 만큼, ‘여승의 가슴 저린 서러움과 곁들여 우수(憂愁)의 찬바람이 스치는 관조적 수필임을 알게 된다. 한 줄기 희망의 빛조차 감춰버린 작품이라면, 차라리 아쉬움이 남지 않겠는가. 어딘가에 불씨를 지피는 기미를 보였으면 하는 독자들의 희구를 평자가 대신하면서 글을 맺는다.

4, 서명언의 수필 <참새와 이불>

참새는 우리와는 친근한 조류이니, ‘허수아비’나 ‘참새 꼬치구이’ 이야기만 나오면 참새이야기는 다한 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에 이불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재미를 더하게 된다. ‘ 김일성의 이불을 만드는데 무려 70만 마리 참새 털의 보드라운 깃털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시(例示)가 이 수필의 압권이다. 이렇게 볼 때, 수필에 있어서 예시가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수필에는 참새의 상징으로 (1) 낟알을 탐한다 하여 착취하는 관리에 비유했고 (2) 백성의 재물을 앗아가는 벼슬아치로 풍자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이미지 대신에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 (1) 우리들의 이웃이며 (2) 사랑스런 동물이며 (3) 자기의 본분을 지켜온 생명이다. 그래서 화자는 겁 없이 자기 곁으로 다가오는 참새와의 대화에서 참새의 미학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역시 화자는,

조그마한 관심과 눈길만 주어도 경계를 푸는 작은 짐승, 해코지 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만 보아도 그게 바로 사랑이고 자연보호가 아닌가,

하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작가는 언제까지나 참새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참새 이불 사건 때문이다. ‘그게 되기나 할 말인가’하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오리털 잠바나 여우 목도리 등, 짐승의 은혜를 우리들은 많이 입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모든 짐승들이 또한 우리들의 먹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해 그렇듯 70만 마리의 새털을 뽑았다니 어찌 전율할 일이 아니라 하겠는가. 몇 년을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는지, 그런 발상을 한 사람들의 마음속을 더듬어 보면 사람 사는 일이 악업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편의 속 깊은 사회 비평적 수필을 문학성이라는 절구에 넣어 잘 찍어낸 성공한 작품이라 하겠다. 웃음을 먹음은 잔잔한 여울이 언 볼을 스쳐가듯 한 번 더 읽게 되는 맛있고 입담 좋은 수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