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08년 한국수필 12월호

권남희 후정 2008. 12. 1. 14:30

 

월간 한국수필  12월호 . 통권 166호/ 발행인 유혜자 이사장 / 편집주간 권남희 /

편집차장 김의배 / 사진기자 김혜숙 (주경 / 기획실장 이철희 / 사무국장 서원순

정기구독 신청 02-532-8702

 

 

 

 

포토에세이

 12월의 거리

                          권남희  

 사진 김의배 수필가 .사진작가  

 일 년 중 가장 낭만적인 달이 12월이지 않을까. 낭만은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선물이기에 12월은 소중하다. 한 해를 보내야하는 거리는 새해를 향한 꿈을 매달아 거느라 긴 밤 잠들지 못한다. 거리는 야생화 핀 들판처럼 가로수에 촘촘히 걸려 밤마다 피어나는 소망의 불빛 천국이 된다. 꽃이 없어도 거리는 불꽃으로 피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덜 쓸쓸하게 한다. 12월의 꼬마전구는 우리들에게 별이 되어 상상력을 선물하는 것이다.

외투를 여민다.

조금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코끝을 스치는 냉기에 팥죽을 생각하며 팥죽가게를 기웃거려본다. 작은설이었다는 우리 조상의 명절, 동지를 빼놓지 않고 팥죽을 끓여주고 붉은 팥죽을 벽에 흩뿌리며 좋지 않은 기운을 쫒아냈던 어머니의 모습도 불빛과 함께 어른거린다. 팥죽을 먹고 겨울을 준비하며 철이 들었던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서양의 구정이었던 크리스마스 날  케잌을 먹고  게르만 민족의 정초 풍속이었다는 트리를 만들어 불 밝히고 캐롤 송을 듣는 12월의 거리에 익숙해져간다.  

 퇴근길 카드 가게에서 작은 달력을 산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상 앞에 세워두고 약속도 메모 할 수 있는 선물용 다이어리를 여러 개 산다. 내 인생에서 다이어리를 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겨울에 만났던 첫사랑과 몇 번의 겨울을 함께 보냈던  때문이라 기억한다.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며 익숙한 길이건만 조금이라도 밝혀두려 현관 입구에 밤새  꼬마전구를 밝혀두었던 날들도 아름답게 떠오른다.        

12월 앞에서는 마지막이라는 달콤한 안도감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며 너그러워진다. 

눈이라도 내리기시작하면 도시는 온통 보너스를 받은 양 들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연인들의 표정은 횡재 했다는 얼굴로 환하다. 약속 없는 사람들도 혹시 모를 만남에 집으로 가는 시간을 늦추기도 한다. 어렸을 적 눈이 많이  내리면 어른들은 보리풍년 든다며 반겨했는데 도시라고 다를 게 없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집밖으로 나와 뛰고  집에서 기르던 개들도 눈을 쫒아 다니는 풍경은 여전하다.

 12월 낭만의 극치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종각 거리다.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기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종소리를 센다. 종소리를 따라 사람들의 기도가 퍼져 가리라. 

  ‘눈썹 센다. 잠들지 마라.’ 어린 날 들었던 소리가 다시 울린다.   

 어느 하루 잠들지 않은 대가로 꿈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더 밝아지리라.  

 잠들지 않는 꿈이 있기에 12월은 풍성하다.

 

권남희 1987년 월간문학 수필등단. 한국수필 편집주간

           제 24회 한국수필문학상. MBC롯데잠실 목요수필 강의.

          분당 홈플러스 금요수필 강의

 

 

한국현대수필평설 6

                                                               김우종

          채만식   <명태>

 채만식은 30년대 이후의 우리 문학사에서 풍자소설로서 주요한 자취를 남겻다. 해방 뒤에도 이같은 풍자 소설은 이어졌지만  6.25 직전에 사망했다. 물론 그는 수필도 100편 이상 남겼지만  문학사에 남긴 주요한 발자취는 역시 소설에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수필에서도 이같은 풍자적 기법과 정신은 잘 나타나고 있다.


  배를 타고  내장을 싹싹 긁어내어 싸리로 목줄 띠를 꿰어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랐다.   눈을 모조리 빼었다. 천하에 이에서 더한 악형도 있을까? 모름지기 명태 신세는 되지 말    일이다.


  ‘여기서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랐다.’는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렸다’로 써야 맞다. 이렇게 고쳐 놓고 보면 매우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야유와 빈정거림의  숙달된 솜씨가 역역히 나타난다. 이 야유는 날카로운 비판이 되지만 동시에 배를 움켜쥐고 뒹굴 정도의 유머 감각이 함께 따른다.  사람이 그렇게 쇳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려지고 , 여러 명이 그런 모습으로 목줄띠로 꿰어져  매달려 있다면 정말 참혹하다. 그렇지만 변태적 가해자들에겐 이것은 그들을 웃길 수 있는 명장면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가 먹어치울 명태이기 때문에 우리는 웃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채만식의 풍자적 기법은 이런 것이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는 어떤 참혹한 소재라도 현실고발의 심각한 긴장감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작자가 할 말을 하면서도 감시자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명태>는 물고기가 아닌 사람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참혹한 악형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작자는 야유하고 빈정거리면서 독자를 웃기고 있기 때문에 일단 남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표면상 어디까지나 사람이 아닌 물고기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비의 구실을 주지 않는다.

 채만식의 풍자적 기법은 이런 의미에서 식민지 시대 총독부가 더욱 키워 준 표현 기법이다.

 이 작품에는 명태가 우리 생활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명태는 그것이 우리들에게서 결코 뗄 수 없는 삶의 일부라는 것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가난한 삶,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 속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정든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수필이 서사적인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변적인 작은 사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자신을 비춰보는 형태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비교적 좋은 출발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작법상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마른 북어 한 마리에 대한 사실적인 그림에 그친다면 문학적 가치는 미흡하다.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써 감동을 증대시키며 더 큰 주제를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말미에 ‘군소리’라는 것을 붙였다. 그것은 물론 상상을 환기시키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외국에서 이민 생활 몇 십 년 만에 보는 명태는 잃어버린 고국에 대한 온갖 기억을 재생시키는 충분한 촉매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상상보다도 명태 자체가 지니는 은유적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 그처럼 바싹 마르고 두 눈이 뽑히고, 때로는 망치로 두드려서 갈기갈기 찢어가며 고추장에 찍어 먹는 명태가 바로 식민지시대의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으로서의 상징적 언어로 쓰이든지 해야 한다.

그런데 작자가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는 짐작은 가지만 작품에서는 실제로 그런 은유법이 살아 있지 않다. 그저 전체가 명태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독자는 사람에게 참혹한 형태로 먹히는 물고기 한 마리를 보며 웃고 즐기는 것에 그치게 되어 있다.

  일제의 간섭 때문에 이렇게 쓰고 말았다고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명태처럼 바싹 마르고  눈동자는 푹 꺼지고 어딘가 슬퍼 보이는 사람 하나를 슬쩍 곁들여   놓아도 좋다. 그러면 명태가 곧 배고프고 서러운 우리 민족의 상징작 기능을 살리고  문학성도 살리며 감동을 증대시킬 수 있다. 


       유진오  <해바라기>

 채만식의 경우처럼 유진오도 그가 창작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필이 아니라 소설에 있다. 그래서 역시 ‘소설가가 쓴 수필’이란 말이 따르게 된다. 그렇지만 소설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수필 문장도 비교적 좋게 나타난 편이겠다. 그리고 수필에선 그것대로 그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 수필은 해바라기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그려나가며 자책과 푸념 또는 심한 좌절감을 나타낸 것이다.

 자책과 푸념은 앞 부분에서 먼저 나타난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큰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인물들도 있는데  자신은 인생의 반을 살아 왔건만 이룬 것이 없다는 내용이다.

 다음에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해바라기가 그려지고 있다.   남들처럼 좋은 화단 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쫓겨나서 응달에서 자라고 있는 그 해바라기는  바람에 쓰러지고서도 다시 살려고 처절하게 안간힘을 쓰는 병든 해바라기다.

작자는 이 해바라기와 건강한 해바라기를 이 사회의 패자와 승자로 규정하고 있다.

 다음에는 병든 해바라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착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이 병든 해바라기한테로 쏠리는 나의 애착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고 하는 강한 어조에는 작자 자신의 감정이 매우 무겁게 실려 있다.  버티고 설 힘도 없이 자라다가 바람에 쓰러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건만 꽃도 제대로 피지 못할 그 해바라기가 바로 자신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제말기의 열악한 사회적 환경이 얼마나 작자 자신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가혹한 것이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소설 <김강사와 T교수>에서 김 강사가 헤쳐 나가는 일제말기 환경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의미에서 작자는  식민지 시대의 한 지식인이 지닌 좌절감과 함께 은연중에 분노마저도 표현한 것으로 감지된다.

 그런데 이런 해바라기라면 표현 방법에서 서정적 감정 이입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밝고 따뜻한 햇살이 그리웠나 보다. 남들이 모두 무럭무럭 자라며 실컷 쪼이고 있는 밝은 햇살, 따뜻한 햇살이 몹시 그리웠나 보다.”

 이렇게 해바라기를 어느 정도 의인화해서 감정을 지닌 주체로 그려나가면 좋은 환경을 빼앗긴 약자에 대한 동정과 이해 전달이 더 빠르지 않을까. 그냥 “햇빛 비치는 밝은 쪽을 향해 단 한치라도 그곳으로 가까워지려고....”라는  개관적 사실적 표현만으로는 미흡하다.

  해바라기가 “줄기와 잎이 흙에 묻힌채, 그래도 또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 아닌가”라고 한 것도 “쓰러져서 얼굴까지 진흙 속에 처박혀 있던  환자가  간신히 혼자서 일어서려 하듯 그렇게 병든 해바라기”는 다시  일어서려 했다는 비유법을  쓰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해바라기에 대한 감정 이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남의 작품에 대해서 감히 이런 요구까지 하는 것은 실례가 되겠지만  작자가 해바라기를 자신에 비유하고 있는 이상 그것도 병든 해바라기라면 작자처럼 병들고 아파하는 동정유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시대 배경에 대한 작자 개인적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와 당대 식민지 배경관계로 암시적 확대가 가능해지면 더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