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용

오세영시인 을 만나던 날

권남희 후정 2009. 3. 29. 13:44

 

 

 

 

 

 

문파문학 2009. 봄호


  이른 봄바람 따라 도착한 그곳

  시인 오세영을 만나다

                                   

 좋아하는 것은  자기희생적이고

               무 보수적이다.  시가 그렇다      


일시 : 2009년 2월 26일 3시부터

장소: 종로구 운현동 오세영시인 집필실

대담 : 지연희 수필가. 시인 ( 문파문학 발행인)

       권남희 수필가( 한국수필 편집주간 )  


도비라 

대담장소에 10분쯤 늦을 것 같다. 지연희 발행인에게 전화를 하고 3호선 전철을 갈아탔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같이 느긋한 목소리다.  어디 쯤야. 다음이 안국역인데요. 어? 나도 다음이 안국역인데......

혹시 해서 바라보니 지하철 같은 칸에서 서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질긴 인연은 어쩔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씩 웃는다.


한국여성문학인회 사무실과 나란히 한 집필실 문을 두드리니 오세영 시인이 문을 열어주신다.  양쪽 서가에 책이 정돈되어 꽂혀 있다. 책을 귀중히 여겼다는 선생의 외가를 늘 생각하고 계실지도 몰랐다.  장사익의 노래가 은은하게 흐르고 있다.

“장사익씨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거든요”

지연희 발행인이 묻는다.  

“ 자주 만나고 친하지요. 그래서 듣는 것은 아니고 최선을 다해 부르는 노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아닌, 영혼으로 부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또 인간적으로 겸손하고 늘 배우려는 자세가 좋아요.”

나는 시인도 아니고 시 한 편도 없으니 나를 기억하실 리 없다.  스스로를 재생시켜본다.  저는 선생님께 시를 배웠습니다. 1985년도쯤 낙원동에서였지요.

시인은, 나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정확하게 당시 문예반을 기억하고 계셨다. 당시 나는 詩作반에서 조병화시인, 황금찬 시인께 배우고 다시 선생님께  몇 달간 시 쓰기를 배웠는데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이유로 짝사랑으로 혼자 오래도록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 때 같이 공부한 친구들은 모두 시인(김정향. 홍영숙. 민숙영. 김현지)으로 등단하여 활동을 하고 있다.

시인과의 인연도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핑계 삼으려 하니 지연의 끈이 한 줄 내 앞에 떨어진다. 영광 태생의 시인은 장성을 거쳐 나의 고향 전주에서 중. 고등학교까지 마친다. 내 남동생과는 고등학교 동창이 된다. 더구나 시인은 고 1때 전교생  백일장에서 ‘아카시아’로 장원한 뒤부터 도 대회나 남원 춘향제, 전국대회든 대표로 추천 받고 나가면 상을 타오는 학생 문사로 유명세를 탔다. 문예반도, 교지도 없던 학교에서 문예반을 만들고 첫 학교신문도 만들었다. 나중에 후배들이 교지도 만들어냈다고 한다. 학교 후배 시인으로 요절한 배태인과 현재 활동 중인 남진우, 강산기(전두환 정권 때 오성회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려 시를 못쓰게 되었는데 결국무죄로 풀려났다)가 있다. 절대 떠들썩하지 않고 겸손한 시인은 자신보다 당시 한상현 친구가 전국적 스타였고 그 친구 영향으로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어쨌든 시인은 고등학교 때 문예반을 만들어 신석정 시인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고 신선생의 사위인 최승범 시조 시인과도 교류한 행운아다.

‘운명적으로 시인이 되었어요.’

박목월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지에 등단한 일도 필연적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고독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부재와 인생의 극적인 부침을 겪었던 가정환경이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추측한다. ‘비사교적이고 내성적인 내 성격은 가난 앞에서도 돈을 멀리했는데 외가의 선비정신을 물려받은 것 같아요. 가난 앞에서 어떤 사람은 절실하게 돈을 좇고 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돈 많은 사람에게서  혐오감을 가져 정신적으로 완성되는 세계를 추구하는 등,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인터넷에 시인에 대한 자료는 많이 있다고 말씀 드리자 ‘이것은 꼭 바로잡아주세요’한다.   . 오세영 시 「봄」에서 / 봄은 피곤한 청춘이 낮잠 든 사이에 온다/가 봄은 피곤한 춘향이 낮잠 든 사이에 온다 로 바뀌어 있다든지 「사월」시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첫구가 언제 우리소리 그쳤던가로 되어 있는 경우들이다. 종종 인터넷에 떠있는 자료들이(통계나 근황, 작품내용까지) 간혹 왜곡되고  틀리는 경우를 본다. 패러디를 했거나 원문을 달라지게 했다면 반드시 밝혀주어야 한다. 인터넷은 망망대해 같아 한 번 흘러가면 걷잡을 수 없어 긍정의 힘도 일파만파지만 피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시인은 다시 ‘내 시가 아닌데 오세영 시로 올라있는 부분도 꼭 바로 잡아달라’고 부탁하신다. 수준 이하의 시로 그 하나가「사랑하는 이에게」와 「이별이 가슴 아픈 날」이다. 그 외에도 여러 편의 시들이 선생의 이름으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당사자에게 지워달라고 해서 지웠지만 복사와 퍼 나르기로 퍼진 다음이라 이곳 저곳에서 불쑥 불쑥 나타나고 만다. 

뒤집어 생각하면 현대시 100선중에 오세영 시인의 작품이 네티즌 투표에서 1위를 했기 때문에 그런 부작용도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정년퇴임 기념으로 1월  소장본 최고급 한정판 활판시집 출간에 대해 질문을 하니 시집을 꺼내 오신다.  5만원 정가인데 한지에 정성을 들인 시선집이며 직접 쓰신 붓글씨 작품도 있다. 소장본으로 많은 시인들이 샀다고 인터넷에 올라있는데 책을 직접 보니 정말 작품으로나 장정으로나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시인은 철학을 전공하고 싶어 했기에 그의 시에는 철학이 녹아있다. 시인이면서 평론가로 활동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나름대로 분석해본다.

그릇에 대한 시가 많다고 물었더니 70편까지 연작으로 나왔다고 해 또 놀랐다. 어떤 시집이든 시인의 시집에는 연작이 있다. 꽃에 대한 시집. 우리나라 지명 108곳의 이름으로 엮은 108편의 시집『임을 부른 물소리 그 물소리 』 등이 그렇다.

“108편은 백팔번뇌에서 따온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불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오시인과 지연희 발행인의 시에 대한 담론은 밤을 새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 불교정신과 시와의 관계를 본다면, 다른 종교에 비해 불교 쪽이 훨씬 시적이지요. 기독교는 절대신, 유일신을 믿지만 불교는 신이 없어요. 본질적으로 논리적 진실이 과학이라면, 비논리적 진실은 문학과 종교가 같은 데서 출발하는데  비논리적인 공통성은 같지만 종교는 신이 있고 문학은 신이 없다는 그 점이 다르지 않나요. 논리적이 않아도 진실의 세계에 도달 할 수 있는 문학이 삶을 지탱시켜준다고 믿습니다.”        

지연희 발행인은 오세영 시인의 시를 가지고 시 수업을 많이 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 「풍장」도 좋고 일본어로 번역된  시집 『시간의 쪽배』에는 너무 좋은 시가 많다고 감탄한다. 시어 속에서 특별한 소재들이 시를 읽게 하고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이유로 선생님의 시가 좋다고 하니 오시인은 ‘재미보다 시에 내용을 담고 인생론적인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대답한다.

나는 시인에게 처음 시를 공부할 때부터 궁금하게 여겼던 부분을 물었다. 감수성이나 영감보다 어떤 것에 대해 써야겠다는 주제를 잡으면, 단순히 언어의 조합 같은 기술을 사용하여 머리로 시를 만들어내는 점에 대해서였다.

“ 감동과 감성이 우선입니다. 또한 시를 쓰는 일도 타고난 5%의 재능보다 95%의 노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칫 기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95%의 노력으로도 힘든 일이 시를 쓰는 일이지요. 95%의 노력으로도 안 되는 부분, 누구도 달성 할 수 없는 수준까지 갈 수 있는 5%의 재능이 시인을 좌우하지만  미당을 제외하고는 그 노력과 재능으로도 안 되는 게 시인이라고 봅니다.”         

관심과 애정이 우리나라 고유의 것들에 있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동물들에 관한 시를 준비 중인 시인에게 후배 문학인들에게 줄 말씀을 부탁드렸다.

“ 부회뇌동하지마라고 부탁드리고 싶어요. 자신을 갖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생각을 길러야 하지요. 요즘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만 의식하고 대세를 따라가는 경향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칭찬도 중요하지만 비판을 많이 해야 문학성이 성숙을 하지요. 자기생각과 자기 주장이 없는 채 문학 작품 평을 추종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문단이나 매스컴에서 평가하는 것에 끌려가지 말고 자기 눈을 갖고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문이나 문학 매커니즘의 평에 한번쯤 회의를 갖고 이성적으로 성찰하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개성은 확실하게, 자기 주장을 밝히는 태도가 좋습니다. 문단에서 자기를 잘못 생각하고 비난받을까봐 두려워한다면 진정한 문학인이 아닙니다. 그 한 가지 사례가 김수영시인에 대한 평가입니다. 제가 볼 때 삼류시인도 못되는 시인인데 그렇게 평을 하면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아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 

훌륭한 문학은 철학에서 나온다는 시인에게 철학책을 추천받고 싶다고 했더니 철학보다 기본적으로 신화와 종교, 경전, 고전들을 많이 읽어야한다고 강조한다.  

 

문학에 관심이 많은 강진군수가  오세영 시인에게 詩문학관을 만든다는 연락을 했다. 문학인들이 바라는 일이기에 반가운 일이지 않은가. ‘시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준비위원을 맡은 시인은 다음 달에 강진을 가야한다. 전남 강진 김영랑 시인. 충북 옥천 정지용. 광주 박용철 이분들이 1930년 『시문학』동인지를 처음 만들었는데 현대문학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4-5회 정도 발간되고 폐간되었지만 프로레타리아 문학이 문단을 지배하고 있을 때 거기에 대항해서 순수시운동이 시작된 큰 의미가 있다. 시인의 순수한 열정과 진심이 문학관에 뿌리내려 많은 사람들이 밥 먹듯 문학을 가까이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바란다.      

내면에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이 있지 않을까 해서 열적은 질문이지만 ‘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시인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  ‘그렇다’고 대답한다.

고독이 자신을 시인으로 키워주었기에 가장 훌륭한 스승은 ‘내 자신’이라는 시인의 말을 곱씹으며 길을 나선다.              


오세영 

1942년 전남영광출생. 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서울대학교 교수 퇴임. <시와 시학 > 주간 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역임.    

<현대문학> 시 로 등단. 한국시인협회상. 공초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1986년 제 1회소월시문학상. 시집 『반란하는 빛』『가장 어두운 날 저녁』『모순의 흙』『문열어라 하늘아 』 외 다수. 평론집 『현대시와 실천비평』『상상력과 논리』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