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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체험의 미 공유
정목일 (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위원장 )
수필은 체험에서 얻어진다. 소설과는 달리 허구를 통해 삶을 얘기하지 않는다. 사실을 통해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체험의 공유는 수필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체험의 공유는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체험의 미 공유는 소통과 교감의 장애 요소가 된다.
젊은 사람들에게 종소리에 관한 수필을 들려주고 감상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젊은 여인이 “실제로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기에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20대까지 한 번도 종소리를 들어보지 못하였다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마음속에 신비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종소리를 아직 한 번도 듣지 못해 공감하지 못한 세대가 있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런 체험의 미 공유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서는 젊은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체험의 미 공유로 인한 답답증을 더 느낄 것이다. ‘세대차’라고 하는 것은 체험의 미 공유로 인한 소통과 교감의 결핍현상일 수도 있다.
나는 젊은이들이 종소리를 알지 못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30년 넘게 아파트 생활을 해오는 동안 빗소리를 망각했다. 달과 별을 잊고 산지 오래이다. 바람의 체감과 흙내를 잊은 지 오래다.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며 나비와 매미를 잡아본 세대와 플라스틱 장난감을 갖고 놀던 세대와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이면 숙제였던 곤충채집과 식물채집을 해본 체험 세대와 곤충이나 흙을 손으로 만져보지도 않은 세대들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청소년들의 글짓기를 보면, 흔히 ‘이름모를 곤충’ ‘아름모를 새’ ‘이름모를 꽃’ 등이 보인다. ‘이름모를’이라는 말은 부적절하다. 명확하지 않다. ‘이름모를’은 무책임하고 애매모호하다. 여기엔 체험이 없다. 사물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언급하려는 태도다. 대상의 이름부터 알고 모습과 성격과 마음까지 알고 나야 묘사가 가능해진다.
농경시대엔 1백년의 변화가 현대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는다. 현대엔 베스트셀러 도서들의 수명은 몇 달을 넘기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체험의 미공유층이 넓어지고 있다. 세대간의 소통과 교감이 잘 이뤄지지 않아 세대차가 심하게 나타나는 걸 본다.
50대는 누구나 공감하는 것들을 20대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체험의 미 공유 때문이다.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이며 토속미의 결정판이라고 평가받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때’나 김동리의 ‘역마’를 읽은 고등학생들의 반응은 딴판이다. 메밀꽃을 본 적도 없으며, 달빛을 밟아 본 경험도 없고, 장날이나 장돌뱅이도 만나본 경험이 없어서 토속정서나 미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연과의 만남과 체험도 줄어들고 있다. 현대인들은 직접적인 체험보다도 인터넷을 통한 가상적인 체험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사유하게 되었다. 직접 체험을 통한 발견과 깨달음에 도달하기보다는 인터넷에 의한 정보, 지식을 통해 세상 알기에 길들여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달빛의 서정과 원두막의 시원함과 모래밭에서의 강물소리를 모른다. 구세대도 신세대의 심리, 의식, 문화, 감각을 알지 못한다.
수필쓰기에 있어서 체험의 미 공유세대를 공감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작가는 누구나 모든 독자들을 만족시킬 작품을 쓰길 원한다. 시, 공을 초월하여 독자들의 공감을 받길 원한다. 이런 요소들이란 결국 명작이 되기 위한 요건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문학은 영상예술에 밀려 일대 위기를 맞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문학의 집이랄 수 있는 책의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한국인의 독서량이 우려할 정도로 줄어들고 있다. 부존자원이 적은 한국은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에 의한 고급 노동력이 발전의 동력이 돼왔다.
국민 독서량의 격감은 무엇을 말하는가. 신세대가 영상물에 탐닉되고 책을 멀리 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미래를 향한 경쟁은 상상력과 창의력에 의해 좌우된다. 책이 안 팔린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과 민족의 장래와도 결부돼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책에서 얻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독서량의 격감은 민족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메말라 감을 말한다. 민족 정서와 전통, 문화 계승에 있어서도 점차 의식이 옅어지고 있다. 문학도서의 독서량 격감은 체험의 미공유폭을 넓혀가고 있다. 세대간의 소통과 교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의 표출이지만, 시, 공간을 초월하여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체험이란 드물다. 작가의 체험세계로 독자를 인도하기 위해선 표현력이 더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수필쓰기에 있어서 체험의 미 공유로 인해 생기는 세대간의 공감대 결여를 해소할 방안의 모색과 노력이 필요하다.
정목일 수필교실 ㅡMBC롯데청량리점 목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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