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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수필분량과 감동
鄭 木 日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필자가 문단에 데뷔할 시점은 수필을 아웃사이드문학, 비전문문학, 아마추어문학 정도로 인식하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처음으로 공식적인 신인을 배출하던 때다. 1975년 한국문인협회에서 내는 ‘월간문학’ 수필공모의 분량이 30매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무척 길어서 어떻게 늘어뜨릴까 고심하던 기억이 난다.
‘현대문학’지에서도 두 번의 추천 과정을 거쳐 등단절차를 마쳤다. 분량이 20매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 후 차츰 잡지의 수필 원고 청탁 분량이 15매 내외이더니, 12매 내외, 최근엔 10매 내외에서 간혹 5~6매 분량이 되었다. 수필의 원고 분량이 차츰 짧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는 소설의 경우에도 마차가지 현상이다.
현대는 속도를 가치화 하고 있으며,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동시에 여러 일들을 해낸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운전을 한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주식시세를 점검하고 전화를 건다.
영화, 비디오, 오디오, 만화 등 시. 청각을 동원한 입체적인 대중 매체들이 손쉽게 흥미와 감상을 유도하는 시대에 긴 분량을 글을 읽게 한다는 건 부담을 줄 것이다. 속도를 가치화 경쟁화 하는 현대엔 짧은 분량의 글이 요구된다.
문장이 짧아지고 간결체가 환영받는다. 짧은 문장에 있어선 서두와 전개를 많이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묘사, 문체미학, 명상과 깊이가 줄어들고 ‘감동’이란 핵심만이 빛을 낸다. 서두나 전개보다는 결미 부분이 중요시 되고, 처음과 과정보다 결과가 더 관심을 끈다.
‘행복잡지’라는 게 있다. ‘샘터’ ‘좋은 생각’을 비롯하여 20여 종이 나오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대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수필이며 6매 정도의 분량이다. 잡지의 크기는 문고판처럼 휴대에 간편하고 분량이 많지 않아 홀가분한 느낌을 준다.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게 부담을 주지 않은 분량이다. 글 한 편의 분량도 지하철 한 역을 지나며 읽을 수 있는 분량인 6매정도이다. 내용도 사상. 철학. 지식. 사회문제. 명상 등의 무거운 주제를 피하고,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위로, 용기. 즐거움 등 긍정적이고 장미꽃 향기를 맡고 난 뒤 같은 행복감을 선물하는 데 있다. 일상 중에 삶의 행복감을 글을 통해서 공감한다는 데 의미가 있으며, 독자들이 많은 것도 이 까닭이다.
그러나 결과 만에 너무 치중하는 면이 있다. 행복지상주의, 긍정적인 면만으로 세상이 굴러가고 있진 않다. 양면성이 있으며 엉켜 살고 있다. 행복과 즐거움은 불행과 고통이 있으므로 존재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굳이 어두운 면을 상기하거나 애써 담아두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은 점점 ‘행복’이란 달콤한 사탕에 길들여간다. 행복 잡지는 독자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현실 도피와 문제의식을 기피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지닌다.
수필의 분량이 점점 짧아져 가는 추세에 수필가들은 어떤 수필을 써야할까? 간결체가 만연체나 화려체 보다 유용하다. ‘전승기결’의 서사구조를 전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느 부분을 강조하여 테마를 드러나게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설명이나 묘사보다 테마 부각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서두보다 결미가 빛나야 효과적이다.
서정 수필이 점점 짧아지면 시와 구분이 되지 않은 상태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오늘의 시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시만 길어지는 이유는 난해성, 압축, 비유, 상징만으로는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해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이다.
짧은 분량일수록 테마가 뚜렷해야 할 것이다. 주제와 함께 감동이 요청된다. 긴 분량의 글엔 문체미학, 사상, 인격, 서정, 개성 등 받아들일 요소가 많지만, 짧은 분량에선 전체적인 인상과 감동이 남을 수밖에 없다. 문학의 핵심은 감동이다. 감동은 우여곡절과 진통과 어려운 과정을 거쳐 피어난 꽃이다. 감동을 피워내기 위해서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보여주며, 공감을 형성하느냐가 요구된다. 이는 수필가의 역량과 인생적인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은 시와 소설의 중간점에 위치해 있다. 수필은 시의 장점과 소설의 장점을 취하면서 체험적이고 독자적인 영역과 개성을 확보한 문학이다. 수필의 분량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에 있어선 수필가는 시인 이상의 이미지. 상징. 비유와 소설가 이상의 서사. 구성. 묘사를 구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수필의 분량이 점점 짧아져 간가는 것은 더욱 독자적이고 전문적이고 개성적인 세계가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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