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

대한민국 헌정회 월간 헌정 1월호 권남희 에세이

권남희 후정 2013. 1. 13. 10:00

2013년  1월호  헌정 발행인 목요상, 편집인 정재호  (국회의윈 헌정회관내 편집실 배인숙 )  수록 신년 에세이  

 

 

                                           강화 초지진촬영 2010년

 

큰 산이 보인다

 

權南希수필가

계사년 새날의 다짐을 적는다. 시간관리 할 것, 계획을 실천할 것....

나뭇가지 물고가는 저 순백의 두루미처럼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꿈을 꿀 수 있고 꿈을 그리기 좋은 시간이다. 몸을 낮춘 채 고요한 시간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지나간 한 해와 함께 새로운 한해의 나아진 모습을 꿈속에서 선물로 받을 것이다.

새해 첫날은 좀 더 하늘 가까이 다가가 있을 법한 하늘문을 열고 싶어진다.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타오르는 횃불로 다가오는 첫날의 영험한 기운을 받고 감동을 새기기 위해서다. 언젠가 별자리를 보러 떠난 강원도 여행지에서의 독특한 경험이 떠오른다. 닫아두었던 산꼭대기 지붕이 열리고 하늘에서 반짝이며 쏟아지던 별들의 감동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으니 인공조명으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좀처럼 받을 수 없는, 신선한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우리는 늘 새로운 기운에 목말라하며 충전을 원하지 않았던가.

노트를 펼친다. 찾아뵐 어른은 계시지 않고 나는 이제 한 집안의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나를 챙겨주던 집안어른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시간을 만나고 내가 가는 길은 마치 눈위에 난 발자국처럼 선명하다. 나의 발자국을 어지럽히지 않기위해 나는 발걸음을 의식하지 않을 없다. 골든벨 소녀 김수영의 73가지 꿈 도전기를 따라 지난 해에 세웠던 60여개의 항목을 꺼내놓고 보니 욕심만 과했다는 게 보인다. 이루지 못한 일들이 많아 부실하다는 생각과 함께 내 인생의 달력은 왜 이렇게 텃밭수준일까 자책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키지 못한 계획표 앞에서 나는 심리적 부담과 죄책감을 갖곤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과 시간을 잘 활용할 것,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부모님 말씀을 따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 등을 다짐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실천력이 약한 탓에 내 일상은 변덕스럽게 바람날리는 모래언덕이었다.

벽에 붙여두었던 아버지의 달력은 아버지의 인생 시계와 같아 변함없고 꿋꿋했다. 농부였던 아버지는 열 두달의 계획을 노트에 적고 실천은 늘 태양과 함께였다. 이른 새벽태양보다 먼저 움직이는 아버지에게는 더도 덜도 아닌 노력만큼의 결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여지고 있었다. 자연의 이치에 따라 밭을 고르고 씨 뿌리며 추수하고 겨울철 준비까지 24절기를 두 배는 더 뛰는 아버지였다. 농부의 일상은 르네상스 시대 사계절 그림에서 달라질 게 없는 정밀화였다. 내 인생의 농부인 나는 아직까지 일 년 농사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할 때가 많다. 계획을 세워놓고 게으름으로 때를 놓치기도 하여 나의 밭은 마치 관리를 하지 않아 잡풀로 가득 찬 형상이다. 먼저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의 구분도 없어 나의 태양은 언제 뜨고 지는지 혼돈에 차있다.

빌게이츠는 새해가 되면 일주일동안 칩거하며 생각에 빠진다 했다. 그처럼 7일을 다 쓰지는 않더라도 나는 새날 앞에 무릎꾾고 앉아 후회와 함께 이리저리 엉킨 생각을 정리한다. 맑은 물로 우려낸 찻잔에 몇 가지 소망들이 얼비친다. 가족의 건강과 화합,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설날이 좋으면 벼농사가 잘 된다’는 옛말은 그만큼 새해 첫날의 마음가짐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여긴다. 새해 못할 일 없다는 말 또한 새해가 되면 그동안 미루고 하지 못했던 일들을 짚어보며 맹세하고 새로운 계획 앞에 용기백배해진다는 뜻이다.

새해가 오는 것은 사람들에게 큰 축복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평등하게 온다. 신이 준 기회이며 선물이다. 그것을 깨닫지못하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귀한 선물로 여겨 탄력적으로 쓰기위해 고민한다. 평등하게 주어지는 이 시간,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며 참고 기다린 끝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둠이 끝나는 새벽이 오는 것처럼 인생에서 무언가 새로운 출발. 새로운 다짐으로 모든 것들을 완성하고 싶어진다. 어떤 건축은 진정한 완성을 위해 늘 현재 진행형으로 짓고있다 했지만 인생은 시간으로 완성하는 축복의 집이지 않을까. 새해 새날이 없었다면 인생은 단두대에 오르는 절박함과 막막함 때문에 쉴새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 몸을 던졌을지 모른다. 열 두달로 쪼갠 태양을 잡아끌고 우리는 열정을 마음껏 바쳐야한다.

새날 곳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백두산에서, 울릉도 저동 촛대바위에서 세계곳곳에서 해돋는 순간에 몰입하며 소원을 비는 진지하고 장엄한 얼굴들을 본다. 자기 자신이 , 가족이 잘되기를, 우리 사회가 잘살기를, 나라가 부국강성하기를 기도한다. 생각이 반이고 생각이 운명인 것처럼 좋은 생각과 좋은 기대만 하고 싶다. 긍정의 기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에너지를 모아 서로에게 시너지효과를 만들어준다. 우리의 간절함이 어딘가에 닿았던 것일까. 2012년 한국은 대단했다. 캐나다 최고 경제 매거진에서 2012년의 빅위너는 한국이라며 애플을 제친 삼성, 혼다를 이긴 현대, 아이돌스타 비버의 유튜브조회를 넘어선 싸이의 경우를 들었다.

그 여세를 몰아 뱀의 해 국운도 다시 월드리더로 떠오르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들의 왕 우로보로스처럼 한국은 앞으로 영원성을 얻어 보상받아야 한다.

그 어느 해보다 계사년 올해는 젊고 활기차게 시작 할 것 같다.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운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기운으로 나라를 번성시키리라 믿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날지도 울지도 않은 새처럼 오랜 시간 날개 접고 힘을 모았던 그 기세를 나라를 위해 쏟을 것이다.

3년동안 나래를 치지않은 것은 곧 나래를 펼치기 위해서이고 울지도 않았음은 민심의 흐름을 살피기 위해서고 한번 날아오르면 하늘까지 오를 것이고 한번 울면 땅이 흔들릴 것이다.

중국 초나라 우사마가 장왕에게 냈던 수수께끼와 장왕의 답에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확신해본다. 시장경제를 조작하고 나쁜 정보로 서민을 곤란에 빠트리고도 처벌받지않는 악법을 없애 나라를 바로잡아 선한 사람들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새해가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커져 운수대통을 꿈꾼다. 올해는 특히 더 나라에 거는 기대가 크다. 모두는 서로에게 해왔던 약속의 말들을 지키기 위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뛰어야 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가장은 가족에게 기업인은 서민들에게 했던 달콤한 말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말로는 뱃속을 채우지 못한다. 말이 있었으니 실천 해주기를 우리나라 최초 여성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박근혜당선인을 진성여왕 이래 첫 여성 통치자라 워싱턴 포스트지는 소개했다.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대통령이 나라 운영을 맡은 것은 신의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 제일의 태산은 어떤 흙덩이도 차별을 두지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큰 산이 되었다. 하루도 헛되이 살 수 없는 농부처럼 지도자의 하루는 온 국민의 하루가 모인 시간의 겹으로 소중할 수밖에 없다.

큰 산이 보인다.

 

權南希 약력

현 (사) 한국수필가협회 편집주간 . 수필집 《육감&하이테크》등 5권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수필강의. 한국문협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제 22회 한국수필문학상. 제 8회한국문협작가상

stepany121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