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Antoni Gaui) 1852-1926
마로니에북스 책 <안토니 가우디> 8페이지 - 1869년 젊은 아토니가우디가 의학을 공부하려는 형 프란세스코와 함께 바르셀로나로 갔을때 아 도시는 이미 앞에서 간략히 설명한 대로 산업발달, 사회변화, 문화 및 예술적 논쟁에 휘말려 있었다. 그해 9월 스페인은 사회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의 폭동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 폭동은 이사벨라 2세의 왕정이 붕괴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두 형제는 곧 아버지와 합류했다. 아버지는 그들을 돌보았으며 학비를 대기 위해 갖고있던 토지를 꽤 많이 팔았다. 그들 세사람은 레우스 출신이었는데 그곳에는 특유의 문화적 활력이 있었다. 가우디의 부친은 친가와 처가와 마찬가지로 구리 세공인이었다. 가우디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가족 작업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그는 냄비의 입체감과 증류기의 섬세한 형태에 감탄했다. 그는 이러한 물건의 공간적인 기능에 크게 감명 받았고 이것은 3차원적인 입체감과 구조를 지각하고 정신적으로 표현하는 비범한 능력을 형성시켰다. 어릴 적에 류머티즘이 발병함으로써 한층 두드러지게 된 그의 신중하고 사려깊은 기질 역시 그를 자연과 나무와 꽃, 동물의 형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자로 만들었다........
아래사진은 2016년 6월 12일 촬영 가우디의 성가족교회( Sagrada Familia) 1883년- 1926년 아직도 공사중이다. 성가족 교회 봉헌 성당의 이름은 그리스도교 가족의
이상적인 모범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지상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에게 이 교회를 봉헌하는데서 유래했다. 가우디는 1883년에 수석건축가이자 공사 감독이 되었다. ...... 1906년이후 는 자금이 부족하여 가우디는 1941년부터 도면과 모형으로 건축형태를 기하학적으로 정의하는데 전념하기로했지만 1926년 가우디가 사망하자 조수인 도메네치 수그라네스가 지휘권을 이어받아 1930년까지 탄생 파사드 위에 석소로 만든 비둘기가 앉아있는 거대한 삼나무 조각을 포함해서 종탑꼭대기와 많은 조각상을 완성했다. 현암사 <가우디> 전기를 읽으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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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족성당 입구 문
바르셀로나 성가족성당 옆 건물
성가족성당이 보이는 포토존 권남희 편집주간 .전수림 리더스에세이발행인 .이춘자 수필가 (황규현 촬영)
성가족성당 포토존
성가족성당 내부 자연빛을 들어오게하여 빛반사가 이렇게 아름다움
성가족성당안의 예수
예수를 묶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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