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필의 어제와 오늘
조경희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님과의 대담
대담자 : 지연희 (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기록과 사진촬영 : 권남희 (수필가)
일시 : 2004년 10월 9일 오후 3시부터
장소 : 한국수필가협회 사무실
얼마전 부군을 잃은 회장님은 예상보다 꿋꿋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계셨다. 미국에서 온 따님이 모시고 다니며 보살피고 있었지만 회장님의 정신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대담은 주로 회장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는데 두 시간이 넘도록 쉬지 않고 기억을 되살리시며 수필사를 들려주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1. 수필을 쓰시게 된 동기를 알고 싶습니다
1930년대는 수필적 산문이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분위기였어. 근원수필도 그렇고 , 이태준씨는 수필을 전문으로 써서 문학의 한 장르로 여겨 책을 내기도 했지요. 향수로 알려진 정지용도 산문을 쓰고 노천명도 수필을 많이 발표하고 어쨌든 장르를 떠나서 시인도, 소설가도 수필을 썼지. 문학이 일상생활 즉 의식주 다음이 아니라 주식과 부식의 동등한 관계의 필요성에서 존재했던 것처럼 수필도 밥과 반찬의 관계처럼 문학세계에서 대등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 글을 배우는 입장에서 수필의 글을 가려고하니까, 그 때는 ‘문장’ 잡지 하나였는데 아무나 수필가나 작가가 될 수 없었지. 추천제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수필을 썼는데 이태준 선생님이 읽어보고 좋은 평가를 주시면서 고쳐주시니까 취미가 붙었지. 한글잡지에 ‘칙간단상’ 이라는 글을 발표한 뒤 수필쓰는 사람으로 주변에서 인정해주었는데 스스로 만족하는 바보인 채 열심히 수필을 썼어요. 1930년대는 또 영화전성시대였는데 주로 불란서의 좋은 영화가 많이 들어왔어. 조선일보 학생란에 영화론을 써보냈는데 그것이 패스가 되었지.
2. 한국수필가협회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족시켰는데 말씀해주세요
1971년 , 수필계를 지도적으로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고 한국수필가협회를 만들어보자고 했는데까 고인이 된 박연구선생을 비롯해서, 서정범, 정봉구. 윤재천.씨 등이 동참을 해주었어. 그후 잡지 발간(한국수필-격월간 )이 진행되었는데 한동안 신인작가를 배출하지 않다가 년도부터 2회추천(초회추천. 완료추천)제도를 두어 신인을 발굴해오고 있지.
3. 한국수필 이 후 수필문학은 르네상스시대처럼 확장일로에 있는데 그럴수록 궁금한 점이 있다면 ‘수필은 어떻게야 써야 하는가’ 입니다. 정답이 있나요?
고전을 읽어야해. 예를 들면 몽테뉴ㅡ이 글은 내용도 어렵지만 소재도 어려워요. 만약 고전을 읽고 이해하여 옮겨서 풀이할 정도면 실력가라고 할 수 있어요. 엘리엇이나 찰스램의 수필은 얼마나 좋습니까? 고전읽기는 우리 모두가 ‘ 건너야할 강’이지. 조선일보에 정과리(연세대 교수)씨도 ‘고전을 읽는 이유’라는 글을 썼는데 읽지않고 수필을 쓴다는 것은 수필가의 태도라고 말할 수 없지. 고전을 읽다보면 사고하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 같은 글이라도 경험만 나열하지 않고 심오한 본질부터 파고들어가면 글의 성격도 달라지는 법이지. 2004년 한국수필 9.10월호 권두언‘막사발’도 그 방면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썼지.
수필을 쓰면서 새록새록 느끼는 것은 구체적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가? 이지. 이태준선생님도 묘사를 생명으로 알고 묘사로 들어가야한다고 주장했는데 , 몸이 아파서 누워있을 때 메모해둔 것을 읽어보았는데 시간, 날짜까지 생생하니까 언제라도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되더라구. .
또 수필에서 중요한 점은 글의 목적을 내세우지말라는 것, 목적은 비밀로 갖고 끝까지 가면서 마지막에서 때려야하지. 나열하는 글도 독창성이 없지요. 항상 물건을 만든다는 그런 의도로 노력했으면 해.
4.수필에서 원고 매수는 중요한가요? 5매 수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5매 수필은 불란서 사람 루나르가 시도를 해서 짧은 글로 유명해졌는데 사실 5매에서는 쓸 것이 없어. 남들은 소설도 쓰고 장편 서사시도 남기는데 우리가 쓰는 영토를 줄일 필요는 없지않겠어요? 영토를 확보해야 하는데...
현대문학에서 종종 원고청탁을 해왔을 때 매수가 15매 정도였지. 조연현씨가 수필을 좋아해서 정지용씨나 내게 수필청탁을 잘했지.
5. 해외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갖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문학단체는 기동성이나 활동성, 창의성을 가져야해요. 그런 의미에서 출발해서 한국수필가협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요. 국내 세미나가 30회를 넘어가니까 해외로 관심을 돌렸는데 몇가지 문제에 봉착해있는 건 솔직한 심정이야. 우선 큰 문제는 외국 작가와 교류가 되지 않고 두 번째는 사무실 운영비나 통역과 번역에 들어가는 경비 등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지. 외국 작가와 교류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면 해외여행의 의미만 있을 뿐 세미나 내용은 국내외가 같아진다는 것이지요. 작가들도 실력을 키워야하고 단체도 능력을 갖춰야하지만 기업메세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6. 문단에서 수필의 비문학성을 지적하면서 장르를 경시해온 건 사실인데 수필문학의 위상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구미나 특히 불란서, 그리고 영미문학에서 소설보다 앞서온 게 수필입니다. 이 점은 엄연히 고전으로 남아있어요. 역사를 모르니까 그렇지 공부를 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어요. 우리나라도 이규보의 ‘남행 월행기’ 등 좋은 고전수필이 있지 않아요? 수필쓰는 사람이 수필을 썼던 사람을 공부해서 계보를 세워야하지. 그것이 수필가들의 역사가 되고 문학사로 정리가 되는데. 잡문이라고 상처를 받으면서 그 상처를 안으로 키워 진주 알같은 수필문단을 이루었고 느티나무가 고목이 될 정도로 커왔어요. 잘 쓰는 수필작가를 확보한 상태지만 모든 수필가들을 비문학성으로 매도하는 건 상처야. * 그렇다면 저희 책임인가요?
그렇지요. PEN이 무엇을 담고 있어? P(Poet) E(Essay) N(novel)이잖아요. 엄연히 에세이가 있는데.
한국수필의 미래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말하면 건방지다고 하겠지만 수필 문학가로서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보다 유식한 문학가가 돼야 하는, 그런 의미에서 각 분야를 공부해야해. 많이 보라는 거지.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아는 게 중요하지. 수 천 년 동안 전해온 과거에 대한 탐구, 특히 예술가들에 대해 알아야 하고 또 새롭게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알아야 하지. 세계적인 것은 결국 과거와 새로움이 일치한다는 부분입니다.
알맹이가 있어야하는 것은 결국 다른 분야의 예술을 아는 일이고 그것이 글쓰는 사람의 의무야.
7. 회장님 노력으로 사단법인이 되었는데 어떤 업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나요 ?
국가법의 도움을 받는 사단법인을 만들었는데 임의 단체나 영세단체에 주지 않는 도움을 많이 받았어. 정부지원과 기부금을 떳떳이 받을 수 있어 좋은 점도 많았고. 이제 수필문학단체는 좀 더 내실을 기하는 쪽으로 노력을 해야하는데, 우선 급한 점은 메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긴장하는 거, 신선한 무엇을 위해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해나가는 자세를 가져야하자. 그리고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는 단체가 돼야해. 세미나나 평론에 동원되는 주제 발표자들, 회원들, 모두 공부를 해야하지. 전진하는 역할을 한국수필가협회가 맡아서 해야하지. 시인이나 소설가협회보다 연륜이 오래 되었는데 이제부터 수필가협회는 두뇌를 흡수해야지. 지식인들 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완고한 생각만을 고집해서 편집의 방향을 끌고가도 안되고 모든 큰 세계의 움직임과 사상, 사고를 내다보면서 거기에 부응하는 수필을 받아들여야하지. 그런 의미에서 권두수필은 회원이 아니어도 선택해서 신문글도 문장이 좋으면 그에게 맡기지. 남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면 수필가협회로 그 효과가 돌아오는 법이야. .
맺음말 :지연희 - 건강 때문에 인터뷰 시간을 짧게 가지려했는데 이렇게 정열적으로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점을 말씀으로 듣고나니 귀중한 체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수필문학사의 산증인이신 회장님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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