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뿔에 대한 애착
권남희
뼈에 대한 재미있는 말들이 있다.
사람의 타고난 골격이 굵고 탄탄하면 통뼈, 가늘고 약하면 새 뼈, 건강하면 강골, 약하고 아픈 치레를 잘하면 약골이라 했다. 덕을 쌓고 복이나 영광을 몇 대째 지켜온 집안은 ‘뼈대있는 집안’이라 불러주었다. 사람들은 뼈 컴플렉스가 많은 지 뼈를 고아 뽀얀 국물을 먹는 일에서 위로를 받곤 한다.
둘째 아이가 몸이 약하고 자라지 않자 주위에서 쇠뼈를 고아 물마시듯 하라고 권했다. 주로 소의 몸에서 나오는 뼈 종류인 사골, 도가니, 꼬리뼈 등이 떨어지지 않고 주방에서 끓었다. 시어머니 역시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면서 뼈라는 뼈는 모두 끓여서 물처럼 마시며 뼈 찬양을 했다. 더운 여름에도 뼈를 곤 국물은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호랑이 뼈로 만든 기름이라며 작고 동그란 통에 연고같은 것을 가져 오셔 이마에 바르시며 ‘이렇게 하면 머리가 아프지 않다’고 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만 남긴 게 아니라 뼈까지 사람에게 건네 주었다.
같은 뼈과에 속하지만 뿔에 대한 믿음은 한층 높아 값도 비싸다. 어머니는 사슴의 뿔인 녹용을 구해 묵처럼 고아 드시기도 했다. 뿔은 머리 위에 솟은 것이라 귀한 대접을 받나보다. 엉덩이에 난 뿔 챙기는 일은 아직 못보았기 때문이다. 총각이라는 말에는 이 뿔의 의미가 들어있다. 옛날에는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빗어올려 두개의 뿔처럼 묶어 맨 남자 아이들의 머리를 총각이라고 불렀다. 의미는 동물적 힘의 소유자, 사회적 인간이 된다는 상징을 담고 있다.
뿔에 대한 속담을 보면 인간의 삶을 빗대고 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쥐뿔도 없으면서... 무는 호랑이 뿔 없다,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 등이다.
뼈는 사람에게 인기가 있지만 개도 뼈에 대해 집착을 보인다. 음식점에서 얻어 온 갈비뼈라도 던져주면 신들린듯 춤을 추며 물고 다닌다. 개에게 닭뼈는 금기다. 닭뼈는 관절부위를 빼고 나면 일자로 죽죽 갈라지기 때문에 창자를 뚫어 죽는다고 했다.
천연기념물 일종인 삽살개를 키웠던 적이 있다. 이 개는 엉큼하여 늘 바깥을 염탐하느라 대문 밑으로 코를 내밀고 있다가 틈만 나면 뛰어 나갔다. 돌아 올 때는 수선을 피우는데 꼭 뼈를 물고 왔다. 하루는 바깥에서 꽤나 큰 뼈를 물고 들어왔다.
‘먹을 수도 없는 뼈를 물고 왔다’고 퉁을 주었는데 눈치를 보며 한 쪽 구석에 들어간 털보는 얼마 있다가 가슴이 답답한지 컹컹 울부짖기 시작했다. 놀라서 달려가보니 큰 뼈가 목 한 가운데 턱 걸려있어 빼지도 어떻게 할 수 도 없는 채 경기를 하고 있었다. 나와 아이들은 놀라서 엉엉 울면서 물을 들이 붓고 입을 커다란 나무로 고이며 숨을 쉬도록 해보았지만 개는 금방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충격으로 아이들은 우울하게 며칠을 보내고 나 또한 통뼈를 목에 박고 죽은 개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라 한동안 밤이면 술을 벌컥 들이킨 후에야 잠이 들곤 했다.
아픔이나 그리움이 ‘뼈에 사무친다’는 역설이 있다. 외과의사의 말을 빌리면 뼈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뼈 주변을 둘러 싼 신경을 다친 게 아픔의 원인이라고 하니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나 ‘뼈골 쑤신다’는 말은 통증에 대한 상징인 것 같다 .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뼈나 뿔에 대해 집착을 보일 때도 왼쪽 허벅지까지 다리를 잘라내 의족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는 한 번도 뼈를 탐내거나 뿔에 대한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입대한 아들의 오른쪽 팔꿈치 아래 뼈가 마른 나뭇가지 꺾이듯 툭 부러져 수술하게 되자 다시 뼛국을 끓이면서 나는 비로소 궂은 날이면 온몸을 쑤시는 통증에 시달리고 가슴에는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야 했던 아버지에게 뼛국 한 번 고아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 3수필집 ‘시간의방 혼자 남다’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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