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12년 월간 한국수필 9월호

권남희 후정 2012. 8. 31. 14:17

 

발행인 정목일이사장 . 편집주간 권남희 .사무국장 서원순 .기획실장 이철희/ 편집차장 김의배 .사진기자김수진.윤중일 정기구독 신청 532-8702-3

신인응모 원고 이메일 kessay1971@hanmail.net

 

구월의 눈동자/한국수필9월 권두에세이

 

鄭 木 日(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정원이 슬퍼한다

 

꽃송이 속으로 빗방울이 차갑게 스며든다

 

임종을 향하여

 

여름이 가만히 몸을 움추린다

 

 

높은 아카시아 나무에서

 

잎이 황금빛으로 바스라져 하나씩 떨어진다

 

죽어가는 정원의 꿈속에서

 

여름은 놀라서 지쳐 웃음 짓는다

 

 

여름은 아직도 장미 곁에

 

한참을 머물며 위안을 찾다가

 

그 크고 지친 눈을

 

조용히 감는다

 

-하이네

 

 

구월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이네는 ‘구월’이란 시에서 ‘정원이 슬퍼한다/ 꽃송이 속으로 빗방울이 차갑게 스며든다/ 임종을 향하여/여름이 가만히 몸을 움추린다’라고 읊고 있다.

 

구월은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을 맞는 순환기에 해당된다. 온갖 과일과 채소가 풍성해지고 밀과 보리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구월이면 먼저 하늘 문이 열리고 마음의 문이 열린다. 변덕스런 하늘이 사라지고 어느새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영혼의 문을 열게 만든다. 마음이 비춰 보일 듯한 하늘을 바라보면,어디선가 금관악기가 내는 그리움의 음률이들릴듯하다. 고요한 달밤이면 대금산조가 들려올 듯 맑고 호젓한 느낌이 비단자락처럼 마음을 감싸준다.

 

구월이 오면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 내 영혼에도 벌레처럼 예민한 촉각이 붙여져 눈도 밝아지고 귀도 예민해진다. 하늘과 땅과 풀벌레와도 교감할 수 있는 영혼 촉각이 생겨나 조용히 자연과 사물과도 마음 교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구월이면 산야에 피는 구절초꽃과 들꽃처럼 눈동자가 해맑아져 사색과 명상에 잠기게 한다.

 

살아가는 일에만 바둥거리며 시달리던 삶에 잠시 벗어나 보이지 않던 우주와 마음과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게 한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지만 비움의 계절이다. 결실의 달이지만, 결별을 맞는 달이기도 하다. 구월이면 누군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낙엽을 밟으며 구월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모든 사물들이 일생을 통해 얻었던

 

사유와 깨달음의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자연과 사물들이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절-. 하늘이 높아지고 깊어져서 기러기나 철새들도 제 갈 길을 잘 떠나도록 하늘 길을 보여주고있다. 깊어져 가는 하늘, 깊어지고 있는 밤-. 다가오는 깊은 그리움. 어디선가 맑음과영성의 목소리 들려올 듯 해 눈을감아본다. 구월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일 듯 하고, 들리지 않는 것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평소에 생각하지 것들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구월엔 누군가 낙엽을 밟으며 그리움의한복판으로 오고 있다. 구월이면 정갈한 마음으로 그리움을 소중하게 영접하고 싶어진다. 내 인생의 여정과 걸어가야 할 길과 발자국이 보이는 달,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베짱이, 귀뚜라미가 사연 담은 편지를 읽는 소리…….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코스모스와 억새가 결별의 손을 흔드는 구월이면,철새들은 시베리아에서 돌아와 바다나 저수지에 몸을 풀고 새끼를 낳으며 휴식기를 갖는다.

 

구월의 한복판에 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의 문을 열고 내가 가야할 길을 바라본다. 맑은 고독 속으로 낙엽을 밟으며 나의 길을 묵묵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