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2013.월간 한국수필 10월호 (발행인정목일 이사장. 권남희 편집주간)

권남희 후정 2013. 10. 8. 16:05

 

발행인 정목일 이사장.  권남희 편집주간  정기구독 02-532-8702-3    

 

월간 한국수필 10월호 발행인 에세이

사랑해요

 

鄭 木 日 수필가( 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동안 목요일이면 서울 인사동의 죽 가게에 들러 아침 식사를 하곤 했다. 근처에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식당이 없었다. 혼자이기에 두 사람이 앉는 식탁을 골라서 앉는다. 단골손님이긴 하지만, 늘 혼자여서 주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 날도 창가의 단출한 자리에 앉아서 죽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옆 좌석은 네 사람씩 앉는 두 개의 식탁이 있었고 한 식탁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고, 또 한 식탁엔 손자인 대학생, 어린이와 아기가 있었다. 3대의 한 가족이 모여 아침식사를 기다리는 중인 듯했다.

아마도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생신이거나, 가족 행사가 있어서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게 된 듯했다. 아기를 둥개둥개 공중으로 들어 올리며 호호- 하하- 웃으며 박수치는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 뭉텅 코에 넓은 이마, 큰 입들이 너무나 닮은꼴이었다. 영락없는 한 가족임을 보여주었다.

대학생 쯤 되는 손자가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가, 옆자리의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죄송하지만 사진 한 번 찍어 주실래요?” 고개 숙여 부탁하였다. 나는 가족사진을 찍는 사진사의 소임을 맡게 되었다.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리면 되는 간단한 일일 수도 있지만. 가족들은 두고두고 이 사진을 보면서 그 순간을 생각할 것이다. 3대가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는 일은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 순간을 기록하여 남기려 하고 있다.

 

맑은 아침이었다.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 식탁 위를 비추고 있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운데에 모시고, 그 옆에 중늙은이인 아버지와 어머니 곁에 손자들이 자리를 잡았다.모두들 카메라를 든 나를 주시하고 있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어찌 그리 닮았는가. 또 얼굴은 둥글넓적하고 뭉텅 코, 두터운 입술이 순박하기는 하지만 잘 생긴 데라곤 없는 평범한 모습들이 아닌가.

“자, 찍습니다. 웃어요.”

나는 임무에 충실하고자 가족들을 향해 주문했다. 나이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아버지, 어머니는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자세마저 꼿꼿이 세우고 긴장한 듯했다. 연세가 많은 어른일수록 어쩌면 마지막 가족사진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임하고 있음이 아닐까.

“너무 엄숙하군요. 활짝 웃으세요. 보기 좋게!”

다시 주문했다.

“다 같이 김치- 합시다”

대학생 손자가 나서서 소리쳤다.

‘하나, 둘, 셋!’ 소리가 나자, 일제히 “김치-” 하는 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가족의 사진 촬영에 모아지고 있었다. 못 생긴 얼굴들인데도 웃으니 꽃이 핀 듯 좋다. 아침 햇살을 받은 호박꽃 같다. 호박꽃은 농촌에서 지천으로 피어 아름답지 않은 꽃인 양 여겨지지만, 아침 햇살을 받은 호박꽃은 청신하고 순란하여 황금별이 내려와 앉은 듯 눈부시다. 나는 웃으면서 가족들에게 말했다.

“자, 한 번 더 찍겠습니다. 이번엔 ‘김치-’ 대신에, ‘사랑해요-’라고 소리치세요.”

왜 ‘사랑해요’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김치-’라고 할 게 아니라. ‘사랑해요-’라고 말해야 될 듯싶었다. 가족들은 어색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도 팔순이 넘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시골에 살면서 한 번이라도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예사로 ‘사랑해요’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여전히 남사스런 말이 아닐 수 없다. 

“자, 찍습니다. 다 함께 ‘사랑해요-”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색한 웃음만 띄우고 입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번 더 찍겠습니다. ‘사랑해요’라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우신가요? 이번에 또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신 사진을 찍지 않겠습니다.”

  나는 가족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김치-’하면 될 일을 가지고, 엉뚱한 주문을 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괜스레 가족사진을 망쳐놓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해요!”

  일곱 살 쯤 돼 보이는 손자가 갑자기 소리쳤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나는 숨을 죽이고 셔터를 눌렀다. 뒤이어 ‘사랑해요-’라는 함성이 크게 울려 나왔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입에서는 물론, 죽집 안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 “사랑해요-”라는 말이 울리고, 뒤이어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굳어있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환히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면서 나도 말하고 있었다. 한 번도 아버지, 어머니에게 “사랑해요-” 라는 말을 하지 못한 불효자였다. 나에게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찍은 희미한 가족사진이라도 한 장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할 수 없는 그 말이 가슴에 한이 되어 맺혀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