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2

월간 한국수필 10월호

권남희 후정 2012. 10. 9. 15:28

 

                            발행인 정목일. 편집주간 권남희 . 사무국장 서원순 정기구독 02-532-8702  

시월의 기도

 

鄭 木 日수필가( 사.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협 부이사장)

 

시월은 두 손을 모우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싶은 달이다.

말을 줄이고 마음으로 샘솟아 오르는 묵언(黙言)을 전하고 싶은 달. 몸짓으로가 아닌 영혼의 표정으로 다가가고 싶은 달이다.

그 동안 삶에 너무 지치고 바삐 사느라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세월만 보내고 만 느낌이 다. 이제 마음이 티끌 한 점 묻지 않은 푸르른 하늘처럼 돌아와 맑은 영혼을 영접하게 하소서. 마음의 샘물로 얼룩졌던 집착, 욕망, 이기라는 때를 스스로 씻어내게 하소서.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얼룩과 먼지를 닦아내게 하소서.

시월엔 겸허히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하소서. 한 송이 가을꽃 빛깔과 한 알의 튼실한 열매를 보면서 성숙과 결실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농부의 땀에 저린 성실과 근면의 손을 보게 하소서.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착하고 정직한 사람들을 농부로 선택하시고,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거두게 하셨습니다. 농부들은 아주까리 잎처럼 큰 초록빛 생명의 손으로 대지를 경작해 왔습니다.

시월엔 들판의 곡식과 숲의 나무들, 어둠 속의 풀벌레들까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지난 일들을 성찰하면서 시월 앞에 섰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한 알의 물방울, 한 알의 씨앗입니다. 안개의 한 알처럼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는 한 생명의 미립자(微粒子)입니다.

시월이면 사방에서 작은 생명의 미립자들이 올리는 기도를 듣습니다. 시월은 하나씩의 작은 결실과 완성을 이루는 계절입니다. 이런 은총의 시간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에 있어서 절정의 순간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을 아름답게 치장하도록 허락하심에 감읍합니다. 햇살 한 줌도 헛되이 하지 않고, 일 년의 결실을 단장하고, 바람 한 점도 소중스럽게 가슴으로 맞아드립니다. 이제 존재들은 영육이 영글어 자신다운 개성과 세계를 펼쳐내면서 완성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풀벌레들, 초목들, 곤충들도 제각각의 모습으로 완성을 이루고 돌아갈 길을 바라봅니다. 시월에 완성과 만남이 있다면, 해체와 결별도 뒤따른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마지막 단장을 하는 온갖 색채의 단풍들도 시간이 지나면 해체와 결별의 시간을 갖습니다. 생명체는 순리라는 영속의 고리 속에 순환하고 있습니다.

시월이면 문득 하늘과 땅에, 들판과 숲에, 강과 바다에 경배하고 싶어집니다. 하늘과 땅의 영혼이 보이고, 뭇 생명체들에게 베푸는 은총과 은혜를 기억합니다. 삶이란 보이지 않게 닿아있는 유기체인 듯 느껴집니다. 홀로 삶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혼자만의 삶만을 생각했던 우둔함과 어리석음을 뉘우치게 해주십니다.

시월엔 온전히 잘 익은 씨앗이게 하소서. 땅에 씨앗을 떨어뜨려 모든 걸 비우게 하소서. 마음에 묻은 욕망의 때와 먼지를 씻어내게 하소서. 마음속에 양심의 종을 울리게 하소서. 겸허히 고개 숙이고 영원을 바라보게 하소서. 시월엔 풍요와 수확의 기쁨과 함께 해체와 비움의 영성을 알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