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국수필

2013년 월간 한국수필 3월호

권남희 후정 2013. 3. 4. 16:16

 

    수필 어떻게 쓸까

 

정목일수필가(한국문협 부이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수필은 대중적인 문학 장르로써 많은 작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한 편의 향기로운 수필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오늘날엔 물질은 풍요하지만, 정신은 갈수록 황폐해져 간다. 지식과 정보는 넘치지만, 덕과 인격을 지닌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현대에 인격 수양에 힘쓰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수필을 잘 쓰는 요령을 알려고 하고 문명(文名)을 얻으려 힘쓸 뿐이지 ‘어떻게 가치 있게 살까’ 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문인들이 여기저기 이름을 많이 내는 것에만 바빴지, 사후(死後)에 자신의 글에 대한 책임과 명예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옛 선비는 보통 4시간 자고 15시간 이상 공부하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선비들의 공부는 ‘어떻게 가치 있게 사느냐’란 주제를 안고. 깨닫고 실천하는 데에 집중 되었다.

현대인은 재주의 비범함과 박학다식을 보여주지만, 갈고 닦은 인격에서 풍기는 정신의 향기가 부족하다. 겉차림은 요란하나 홀로 가꾼 내면의 미가 없다. 요령껏 풍요하게 살까만을 궁리하고, 의미 있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수필가들도 글을 어떻게 잘 쓸까만을 생각하지, 어떻게 살까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논픽션인 수필을 홍수처럼 쏟아내고 있지만, 향기로운 수필을 찾기가 어렵다.

좋은 수필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참다운 인간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맑고 고결한 영혼, 순수하고 뜨거운 애정의 소유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경박하고 상식적인 글이 쏟아져 나오는 데도 수필 풍요시대라고 좋아할 수 있겠는가.

양의 팽창보다 질의 향상이 수필을 살리는 길인데도, 마구잡이식으로 자질 부족의 수필가들이 양산되고 있다.

현대는 작가가 곧 독지요, 독자가 곧 작가인 시대다. 모두들 컴퓨터를 이용하여 글을 써댄다. 문자판을 타닥타닥 쳐내기 때문에 필자(筆者)라는 말대신 타자(打者)라고 해야 옳다. 펜으로 원고지에 한 칸씩 써내는 수공업식 글쓰기에서 컴퓨터라는 기계를 통해 내놓는 대량생상체제의 시대가 되었다. 대량생산체제는 대량소비체제가 있으므로 가능하다. 발표매체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작가는 다작(多作)을 일삼게 된다.

 

깊은 체험과 사색할 여유도 없이 작품을 내놓게 되니, 지식전달의 상식성에서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사색이 고일수록 작품세계가 깊어지고 향기가 나는 법이다. 사색할 틈도 없이 옅은 생각을 퍼내기만 하니 맛이 날 리가 없다. 물질과 본성적인 쾌락의 추구, 편리와 이기주의에 치닫는 사회풍조 속에 수필가들만이 독야청청(獨也靑靑)할 수도 없다.

수필가는 물질만능의 세속에 허우적거려서는 안 된다. 맑고도 깊은 영혼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씻어주고 삶의 가치와 의미를 꽃피우는 길로 인도해야할 책임이 있다.

 

지식인으로서 양심과 정의를 지키고 인간주의와 공동체의식을 고양시킬 의무가 있다. 자신만의 즐거움을 위한 글쓰기도 있을 것이나, 작품으로 발표되면 개인적인 것이 아닌 공유물(共有物)이 된다. 수필은 개인적인 체험의 사회적 공유화를 위한 것이다.

시와 소설은 픽션으로 작가와 작품의 일치를 요구하지 않지만, 수필은 논픽션으로 작가를 그대로 드러낸다. 시인과 소설가는 굳이 인격을 따질 필요 없이 상상력, 흥미, 문장력만으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다. 수필가는 먼저 참다운 인격체가 아니고서는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 수필은 꾸며낸 얘기가 아닌, 자신의 고해성사(告解聖事)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남 앞에 드러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쉬울 듯 하지만 진실, 겸허, 용기가 겸비돼야 한다. 자신을 과장, 미화하려는 유혹에 걸려들기 쉽고, 또 위장, 거짓으로 자신마저 속이려는 미망에 빠지기도 한다. 

필자는 수필가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훌륭한 인격체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수필을 쓰면서 내 인생을 바라본다. “어떻게 살까?” 이것이 문제다. 수필을 무기로 삼을까. 눈물을 닦는 손수건으로 삼을까.깨달음의 길로 가는 벗으로 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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